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의 이름은 바슬라브 니진스키의 동생으로 많이 기억되고 있다.하지만 그녀가 안무가로서 발레계에 끼친 영향은 오빠가 무용가로서 남긴 영향력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민스크에서 폴란드계 무용수인 토마스와 엘레오노라 베레다 니진스키 사이에서 세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니진스카는 4살때 오빠인 니진스키와 함께 니즈니노브고로드안에서 크리스마스 야외극로 무대 데뷔를 한다. 니진스카 역시 오빠 니진스키처럼 페텔스부르그의 황실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마린스키 극장에서 활동하다 1909년 발레 륏스에 합류해 첫 시즌에 모든 작품에 출연하는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니진스카는 19세기 고전발레에 반기를 든 선구적인 작품에서 주역을 맡아 왔는데, 특히 1910년에 '사육제'에서 맡은 빠삐용(Papillon)역은 큰 성공을 거둬 그녀의 명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니진스키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동조자인 동시에 무용수로서도 뛰어나 오빠 니진스키는 자신의 작품에 동생을 출연시키는 것을 좋아했으나 정작 니진스키의 회심의 역작 봄의 제전에는 임신으로 출연하지 못했다.니진스카의 강렬한 표현력과 테크닉에 맞춰 희생된 처녀의 춤을 안무했던 니진스키는 화가 나서 펄펄 뛰었지만 결국 마리아 필츠를 위해 쉽게 안무해 공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 역사상 가장 격렬한 여성 솔로로 기억되고 있다)
니진스카는 1차 세계 대전 때 발레 륏스를 잠시 떠났다가 1921년부터는 안무가로 다시 합류해 결혼, 암사슴 등 현대 발레를 여는 걸작들을 안무했다.하지만 러시아에서 망명한 발란신을 디아길레프가 지나치게 총애하자 불화를 빚어 다시 발레 륏스를 떠나 유럽과 미국의 여러 발레단의 안무가로 활동한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23년에 안무한 결혼(Les Noces)이고 그외 대표작들로 1924년에 안무한 '푸른 기차'와 암사슴들(Les Biches)이 있다. 그리고 니진스카는 막스 라인하르트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각색하고 멘델스존의 음악을 사용한 영화의 안무를 맡기도 했다.
오빠 니진스키와 마찬가지로 양성애자로 알려진 니진스카는 두번의 결혼에서 두 아이를 얻었는데, 아들은 차사고로 사망했지만 딸은 니진스카의 뒤를 이어 안무가가 되었다. 니진스카가 결혼하지 않았지만, 일상 가장 사랑했던 이는 러시아의 대 베이스 가수인 샤리아핀이라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퍼시픽 팔리사이드에서 사망했다.
니진스카는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 발레를 연 개척자로 평가되고 그녀의 안무작 결혼은 과거의 발레와 현재의 발레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