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설난영
김문수의 아내 이름이 설난영이라는 건 이번 대선 덕분(?)에 알게 됐지만 그녀의 존재는 꽤 오래, 아마도 수십년 전에 00여성 어쩌고 하는 류의 잡지 기사에서 알았다.
(역시 확실치 않으나) 부부 인터뷰였던 것 같은데 김문수와 첫만남부터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 비하인드 내용이 -당시에는 사랑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성폭력에 가까운- 뜨아~했던 내용이라 '선데이 서울'을 보는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내 성인지 감수성은 90년대 평균 수준이었기 때문에 김문수가 어마어마한 ㄱㅅㄲ 라는 생각은 없이 그냥 위장취업 엘리트와 노동자의 사랑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었다. (창피...)
그렇게 스쳤던 기억이 잠깐 되살아났던 건 박완서 작가의 단편을 읽었을 때.
소설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내용은 공장에 위장취업한 부잣집 엘리트 노동운동가와 결혼한 찐 여자노동자가 느끼는 위기감과 위화감에 관한 거였다. 자본가인 부모의 세계로 돌아간 남편을 따라 아내도 중산층에 편입되지만 아내는 끊임없이 자신이 남편의 세계와 다름을, 그걸 남편이 그녀의 비천한(?) 과거를 지우려고 하는 걸 느끼고 언젠가는 버림받을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아들의 돌잔치 날 귀티 난다는 칭찬에 너무도 기뻐하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박완서 작가의 묘사는 정말 기가 막혔다.
그렇게 짧게 떠올렸다가 잊고 있었는데 요즘 대선 통에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을 떠올리고 수십 년간 몰랐던 설난영이란 이름도 알게 되네. 설난영 씨가 요즘 이슈가 되면서 나오는 주변의 증언들은 그 소설 여주인공이 남편의 세상에 떨려나지 않기 위해서 했을(소설은 아내의 결별 예감에서 끝) 각고의 노력을 떠올리게 함.
태생부터 마지막까지 개성 양반의 자손이자 중산층 사모님이었던 박완서 작가님인데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상상력과 통찰은 정말 대단하다고 새삼 감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