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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국내)

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 - 백 년 전 「데파-트」 각 층별 물품 내력과 근대의 풍경

by choco 2023. 9. 1.


최지혜  |  혜와 1117 | 2023.7.19~8.24

추억을 더듬는 독서라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른 온갖 아기자기한 추억과 기억을 풀어놓을 예정이었던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는 오늘 결국 감행된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출로 인해서 일본에 대한 나쁜 기억들이 흙탕물처럼 다 떠오르는 기록이 될 것 같다.  

486, 586이라고 뭉뚱그렸고 젊은 시절엔  X 어쩌고 불렸던 내 세대는 어릴 때는 화사한 일제 문방구, 10대 초중반은 논노 잡지나  X 재팬으로 대표되어 기억하는 일본 문화에 꽤나 심취하고 동경을 품은 동시에, 학교에선 반일 교육을 받고 일제 쓰면 안 된다는 교육도 함께 받았던 상당히 모순된 세대.  20대가 되어 일본에 갔을 때는 이미 한일간의 격차가 상당히 좁혀지고 일본 뿐 아니라 다른 서구 국가를 먼저 방문하고 접했기 때문에 예쁘고 맛있는 디저트나 입맛에 맞는 일식 종류를 제외하고는 딱히 일본이 엄청나다거나 대단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로 접한 선진 문물이 일본제(이제는 쳐다도 안 보는 코끼리 밥솥 포함)고 일본이 우리보다 많이 앞선 상태에서 일본을 만나 거기가 지상천국이자 우리가 본받아야할 지향점으로 받아들인 저 윤완용 일가를 포함한 윗 세대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인상, 그 초등 효과의 한계도 인정한다. 

나만 해도 샤방샤방 예쁜 그림이 그려진 일제 연필의 진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지금도 기억하니까.  미제는 잘 부러지지 않고 단단하고 부드럽긴 했지만 색이 좀 흐렸고 (같은 HB인데도 왜 그랬을까?) 안 예뻤고, 국산은 뭔가 미묘하게 깔깔하고 덜 예뻤었다.  그렇지만 학교엔 일제 연필 못 가져감.  학교에서도 금지했고 가져갔다면 동급생들에게 매국노 소리 듣는 분위기.  ^^; 

저 윗줄까지가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24일에 쓴 것.  핵오염수 방류에 박수 치는 걸로 욕 먹더니 그걸 또 다른 욕으로 덮으려고 홍범도 장군님 흉상을 육사에서 철거하겠다고 하나회 철퇴 맞을 때 치운 줄 알았던 정치군인들이 굿을 하고, 이제는 오세훈(그동안은 미워도 고와도 경칭은 붙여줬으나 이제는 그럴 자격이 없음)이가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열사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나서는 망조 들린 8월을 보냈음.  1900년에 접어든 조선인들, 혹은 대한제국인들의 마음에 90% 실제 체험하느라 도저히 독후감이 써지지 않아서 내내 덮어뒀다가 그래도 끝은 내자는 심정으로 앉았다.  

옛날에 아닐로그로만 자료 찾던 시절,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면 오래된 신문에 있는 광고를 즐겨봤다. 마이크로필름은 오래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데도 그걸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이 정말 잘 갔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약장수들의 과장은 그대로구나~ 국산품 애용 강조는 유구한 역사를 가졌구나~ 가전제품이며 온갖 물건들 광고를 보면서 옛날 사람들과 지금 현대인들도 혹하는 지점은 똑같고, 엄청나게 발전한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과거를 재밌게 들여다봤었다. 

이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는 내가 짬짬히 들여다보던 옛날 광고들의 총괄판이랄까... 점점히 흩어진 제품과 광고의 기억을 한권으로 묶어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당시 조선 사람들은 무엇을 쓰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당시 조선에 있었던 백화점들과 각 층별로 거기서 팔던 물건들, 제품이 그 시대에 가졌던 의미나 위치를 일제 강점기 때 백화점 투어를 하듯이 아주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말 꽉꽉 밟아넣어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면의 한계 때문에 줄이고 쳐낸 것들이 많지 싶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하고 세세하게 정보를 모으고 또 딱딱 맞는 도판을 배치했는지 작가와 편집자에게 내내 감탄하고 감사하면서 읽었다. 

서울이 경성으로 불리던 시절, 조선 상권을 지배하던 일본 자본이 백화점을 열고 거기서 일본제품을 국산품이라고 홍보하는 걸 보면서 찝찝했는데, 조선 자본으로 만든 조선 회사에서 제조한 물품에 국산품이라고 또 강조한 걸 보면 100년 전 그들고 나와 비슷하게 찜찜하고 껄적지근했지 싶다. 선택권이 없으면 할 수 없겠지만 있다면 굳이 일본이 아니라 조선 회사가 만든 걸 쓰는 게 사소한 반항이고 쾌감이었을 것 같다. 

반대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등장하는, 친일파나 거기에 경도된 따라지들처럼 "역시 물건은 내지 것이 좋다~" 며 물산장려운동이나 조선제품을 무시하고 잘난척 했을 거고.  대표적인 친일파 변절 지식인 이광수와 그 아내 허영숙의 양복장 관련한 부분은... 이광수는 자기 부부가 검박하다고 착각했는지, 아니면 그렇게 보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백화점에서 매번 경품 추첨에 응모할 정도면 소소한 거라도 엄청 샀다는 소리인데 그건 당시에선 굉장히 잘 살았단 거다. 친일파들은 저때도 잘 먹고 잘 살았구나 새삼 분노. 

담배전매 제도를 통해 수익을 올리려는 총독부에 의해 단속되던 수입 담배에 대한 부분을 보면서는 내가 어릴 때도 있었던 양담배 단속에 관한 기억이 또 새록새록.  애연가 중에선 맛도 맛이지만 총독부 엿 먹이는 짜릿함을 위해 수입담배 폈던 사람도 있었을듯.  

백년 전 생활사를 구경하는 소소한 즐거운 기억을 풀어놨을 책이 애먼놈들 때문에 분노와 성토의 장이 되어버린 건 개인적으로 슬픔.  저렇게 조선인들 주머니를 털어갔구나...란 생각이 마지막까지 떠나질 않네.  ㅆㅇㄴ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