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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국외)

19세기 엿보기 : 패션, 마케팅 그리고 그림

by choco 2023. 11. 2.


이승희 | 경춘사  | 2023. 여름? ~ 10월?

 

한 시기나 분야에 꽂히면 그 관련 책들을 몰아읽기 하는 경향이 있어서 올해 19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 책들을 많이 보고 있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19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저자의 책들에서 간만에 벗어남) 그림과 패션을 중심으로 당시 문화와 사회상, 산업을 10개의 주제를 갖고 펼쳐내는 책인데 일단 도판이 정말 아름답고 다양하다.  큰 판형이라 세세하고 시원하게 그림과 사진을 담아낼 수 있어서 눈에 쏙쏙 들어오는데 일단 합격. 

 

색감을 다채롭게 주제로 끌어들이면서 패션과 당시의 다양한 문화를 담아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했던 생각인데-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이 없었다면 이 저자들의 글을 아주 홀쪽했겠다 싶음.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대표되는 작품을 많이 남긴 에밀 졸라인 터라 그의 소설들은 읽을 때도 부담스럽고 책장을 덮고 나면 뭔가 참 찜찜하고 우울하다.  제르미날이나 목로주점은 그 극치이고 나나는 화려하게 불태우고 정상에서 떠나버린 결말이라 그나마 깔끔.  그의 소설 중에 아마도 유일하게 우울하지 않은, 백화점 사장과 점원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인데 나는 로맨스만 따라갔던 그 스토리가 학자들이나 인문학 저자들에겐 당시 산업과 사회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인 모양.  매 장마다 에밀 졸라가 그린 백화점과 고객들의 모습이 책의 내용에서 펼쳐지는 게 또다른 재미였다. 

 

패션이나 그림, 마케팅을 설명하다 보니 포함된 19세기 사회상을 얘기하다 보면 절대 빠지지 않는 게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공개 서한의 주인공인 드레퓌스 대위 사건.  

공권력이 자신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 날조된 증거로 희생양을 만든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 의 진실을 밝히려다 감옥까지 가는 등 온갖 고난을 겪었던 피카르 중령을 보면서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죽음과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역시 고통받는 박정훈 대령을 겹쳐보게 된다. 

 

피카르 중령이 드레퓌스가 무죄라는 증거를 본 뒤 그걸 주변 장교들에게 알렸더니 손 떼라고 협박 받은 거나, 한직으로 쫓겨나면서 그 증거를 변호사에게 줬더니 기밀 누설이라고 고발당해서 감옥 보낸 건 19세기라서 핑계라도 대보지 21세기 한국에서는 이게 뭔 200년 퇴행인지.  

그리고 19세기 프랑스에선 에밀 졸라를 비롯한 양심있는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치열하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싸웠지만 한국은 언론사 노비들과 마름만 있는 걸 보면 더 암울.

 

독서 기록하다가 의식의 흐름이 너무 막 튀는 것 같긴 한데...  내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처음 안 게 아마도 초등학고 6학년인가 중학교 1학년 즈음인데 그때는 유대인이라서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에 더더욱 분노했었다.  그렇지만 지금 가자 지구에서 히틀러가 한 수 배우러 올 만행을 저지르는 유대인들을 보니 왜 유럽에 오랫동안 반유대적 분위기가 강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있음.   

 

아주 예쁘고 화사한 책을 보다가 옆길로 엄청 많이 샜는데, 보고 읽고 소장의 즐거움을 골고루 주는 예쁜 책이다.  

 

내가 착취당한 식민지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뇌에 주름을 좍좍 편 다음 중산층 정도인 명예 유럽인에 빙의해서 보면 19세기 유럽은 참 낭만과 낙관이 넘치는 매력적인 시절임.  인간이 가장 낙관적이고 자신감이 넘쳤던 시절이 이때가 아니었다 싶다.  오죽하면 라 벨 에포크라고 불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