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Grosse Verlierer 로 2004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나 간단히 하자면, 아무리 위대하건 어쩌건 패배의 얘기를 읽는 건 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뻔한 패배가 보이기에 이입이 되어서 고통스럽다고 해야할까? 차라리 결과를 모른다면 몰라도 뻔히 그 절망과 비극의 구렁텅이가 보이는데 그걸 지켜보는 건 아무리 나와 한푼 관계없는 인간들의 운명이라고 해도 힘들다. 그래서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임에도 꽤나 시간을 끌었다.
만약 이 저자와 내가 정치관까지 맞지 않았다면 시간이 더 걸렸거나 포기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무지하게 다행히도 살짝 빨그스름한 물이 든 이 볼프 슈나이더씨는 내가 무지 재수없어하는 인물들에 대해 너무나 동감 가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정말 따로 메모를 해서 보관해 두고두고 써먹고 싶을 정도인데 특히 앨 고어에 관한 부분.
이제껏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자유선거에서 앨 고어만큼 그렇게 처절하게 기만당한 패배자는 없었다. 정작 선거에서는 이겨놓고 말이다.
하필이면 동생이 주지사로 있는 동네에서 또 그 난리가 났으니... 당시에 플로리다에서 일어났다던 일에 대한 뉴스나 기사를 보면서 1987년 한국의 대선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잘난척하는 너희나 우리나 결국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하긴 이때 미국의 난장판을 보고 정치 후진국으로 유명한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자기네 나라에서 선거 감시단을 파견해줄까 비아냥거렸다는 기사까지 나왔을 정도니 뭐...
승부욕과 명예욕 강한 라이벌에게 승리와 명예를 도둑맞은 패배자들, 우연찮게 강인한 천재와 같은 시기에 태어나는 바람에 그의 광휘에 가려 무너져버린 연약한 천재들.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해 무너진 사람들. 우리 대다수가 아는 승리자들에게 가려진 유명한 패배자와 이 책을 통해서야 겨우 존재를 알게된 인물들의 얘기가 상당히 재미있고 또 드라마틱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등소평이나 처칠 처럼 별로 패배자인것 같지 않은데 수록된 인물도 있고.
다양한 인물을 접하고 평면적인 위인전 뒤에 숨은 입체적인 인물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책이다. 인물이나 내용에 그다지 감정 이입을 하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술술 재미있게 읽어나갈듯~
책/인문(국외)
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 을유문화사 | 2007.2.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