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역에서 약속이 있어서 오가는 동안 읽을 적절한 크기의 책을 찾다가 이걸 간택했다. 뒤쪽에 부록으로 원문읽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문 원문이 있는 걸 모르고 골랐던 관계로 집에 오는 전철 마지감 20여분은 읽을 것이 없었으니 분량 조절에는 실패인가? ^^
내용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는 것도 이유가 있지만 빠르게 읽어나가기 좋은 재미있는 얘기들이 이어진다. 이런 류의 옛 이야기를 옮길 때 지나친 고어체로 삐걱거리거나 또 반대로 쉽게 읽도록 한답시고 지나친 현대어와 유행어. 혹은 유치한 문체로 옛 글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의 신선과 귀신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어른들을 위한 옛날 이야기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살려둬야할 옛 고어나 용어는 각주를 달아 보충해주면서 흐름을 끊지 않도록 풀어낸다.
철저하게 남성 위주였던 시대상에 걸맞는 사상이 엿보이는 내용들은 현대 여성 입장에서는 늘 그렇듯 불편파고 열 받지만 그건 또 당시의 가치관이고 생활이니 현대의 잣대로 내가 가타부타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조선의 신선과 귀신, 기인들. 그리고 신선이나 귀신과는 전혀 연관이 없지만 기담에 가까운 독특한 인연의 얘기들과 여인들의 이야기들이 꽤 읽을만했다. 귀신과 신선 얘기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확실히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중간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서구인들의 눈에는 세 나라의 문화가 다 거기서 거기고 비슷해 보이지만 귀신들의 행각(?)이나 행동 양식을 보면 진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천예록에서 발췌를 했다는데 언제 시간이 나면 천예록을 읽어봐야겠다.
이 책의 내용을 위해 그린 삽화는 아니지만 비슷한 분위기의 적절한 삽화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어서 눈요기거리가 되서 마음에 들었다. 조악한 삽화는 없느니만 못하지....
책/인문(국내)
조선의 신선과 귀신 이야기
임방 (지은이), 정환국 (옮긴이)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8.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