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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기/기타

초콜릿에 대한 기억들

by choco 2008. 6. 16.
혈당 보충을 위해 길리안을 뜯어서 하나씩 집어 먹다가 그냥 끄적끄적.

어찌 생각하면 좀 쪽팔리는 기억이지만 내 어릴 때 소원은 키세스나 M&M을 나 혼자 큰 거 한봉지 원없이 먹어보는 거였다.  나를 초콜릿의 길로 빠뜨린 둘째 이모가 월급날 허쉬 판초콜릿 큰 사이즈를 사왔을 때의 그 감동이라니. ㅎㅎ  (둘째 이모는 해외 여행이 자유화되고 내가 이미 M&M이나 허쉬는 예전 가나 초콜릿보다 더 낮게 취급하던 때까지도 여행 갔다올 때마다 나를 위해서 선물로 M&M을 사다주셨다.  ^^)

그러다 대학에 갔던 첫 해.  여름방학 대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음악 캠프에 갔던 친구들이 돌아올 때 선물로 사와서 몇개씩 나눠먹었던 모짜르트 초콜릿.  그걸 먹었을 때 층층이 녹아내리면서 안에서 느껴지는 다채로운 맛에 감동했었고 또 조기유학을 간 동생들이 방학 때 집에 오면서 나를 위해 선물받은 걸 그대로 가져온 페라로 로쉐를 처음 먹었을 때 천지개벽의 감동을 느꼈었다.

길리안을 처음 맛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부터 벨기에 초콜릿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갖게 됐고 고디바며 뉴하스 등 이런저런 고급 초콜릿들의 세계로 접어들면서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허쉬 가문은 퇴출 당하게 된다.  유일한 예외는 노란 포장에 땅콩이 든 Mr. Goodbar.  얘는 변함없이 맛있음.  그런데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지 수입식품점 아줌마한테 따로 부탁을 해야만 갖다 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동생이 딱 세알 가지고 온 페라로 로쉐를 처음 먹었을 때 그 감동은 어떤 초콜릿에서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페라로 로쉐가 궁국의 맛이냐?  누가 주면 먹을까 요즘은 요즘엔 내 돈 주고 사먹지도 않는다. 작년에 동경하던 벨기에의 수제 초콜릿들을 왕창 정말로 원없이 먹을 때도 맛보다는 꿈꿔오던 '벨기에 수제 초콜릿'이라는 그 타이틀(?)에 더 넋을 잃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적당한 결핍과 동경이 맛을 상승시키는 게 아닐까 싶음.  동생이 내가 먹는 것에 질려서 자기는 초콜릿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예전엔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던 초콜릿들인데..... 냉장고에는 뜯지도 않은 뉴하스 초콜릿이 한통 그대로 있고 길리안도 받은지 거의 2주가 다 되어서 뜯었음.  

이모가 늙으니까 젊을 때 만큼 초콜릿이 땡기지 않는다고 했을 때 난 절대 안 그럴거라고 자부했는데 나도 늙나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