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여름이 기세를 꺾으면서 그동안 새롭게 마신 차들 중에 생각나는 이름들이다. 몇 개 더 있긴 한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애들은 운명이려니 하고 통과.
티 센터 오브 스톡홀름 Sir John Blend
꽤 오래 전에 티하우스에서 티 센터의 다른 차들을 구매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샘플티. 알루미늄 밀봉된 거라 안심하고 내버려뒀다가 얼마 전에 뜯었다.
랩생이나 러시안 캐러반처럼 훈연향이 감도는데 자스민 종류로 보이는 흰 꽃잎도 몇가닥 보이는 묘한 조합. 딱 한 번 마실 분량이라 조심스럽게 중간 사이트 티포원에 우려봤다.
향기 그대로 랩생 계열이 베이스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진한 연기냄새와 달리 맛은 아주 가볍고 부담없는 목넘김을 보여주는 특이한 홍차. 그 하얀 꽃이 훈연향을 중화시킨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보는데 답은 모르겠음.
시간이 많이 지나서 수색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니 통과. 식사와 어울리는 홍차로 르노뜨르의 키쉬나 해산물 파이와 함께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라미를 넣은 샌드위치와 함께 마셨는데 아주 궁합이 좋았음.
각설하고, 괜찮은 홍차였다는 평가를 내리지만 이 브랜드가 한국에서는 후덜덜한 가격인데다가 집에 랩생, 기문, 러시안 캐러반이 넘치는 관계로 구매의사는 없음.
마리아쥬 프레레 Elixir D'amour
일요일에 평창에서 돌아와 오후에 원기회복을 위한 티타임을 위해 선택한 차다.
앞 글자는 모르겠고, 사전 찾아보기도 귀찮으니 그냥 무시하고 뒷 글자를 보니 사랑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제목인 것 같다. '사랑'이란 단어가 나오는 홍차 블렌드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장미 아니면 초콜릿인데 얘는 장미꽃으로 당첨. -_-;
내가 유일하게 마시지 않는 화차가 장미차일 정도로 내가 마시는 더운 물에서 장미향이 나는 건 질색을 하는 고로 차를 뜯은 순간부터 '으으으' 괴로워했다. 더구나 곁들임이 치즈 케이크였기 때문에 더 에러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마구마구.
그런데 뜨거운 물이 장미향기의 대부분을 날려줘서 그런지, 다 우린 홍차는 의외로 거부감 없는 맛과 향. 은은한 꽃향기가 코끝에서 목구멍을 살짝 간지르는 정도로 사라지고 진항 홍차의 향기가 아주 풍부했다. 치즈 케이크의 진한 느끼함을 씻어주는 역할을 잘 해줬다.
맛이 없지 않은 한 차 품평에 무덤덤한 편인 내 동생이 맛있다고 자발적으로 칭찬을 한 걸 보면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던 듯.
샘플티를 구매한 거라 이걸로 끝인데... 작년에 사온 마리아쥬의 홍차들 대부분이 개시도 못하고 벽장에 켜켜이 쌓여있는 고로 구매는 불가능. 봄에 마시지 못한 차들을 열심히 마셔줘야겠다.
테일러스 오브 헤로게이트 티피 아삼
어제 찐~하고 쌉싸름한 아삼을 마시고 씁쓸한 마지막 잔은 구수한 밀크티로 마시고 싶어 선택한 친구. 교환했던 차인데 교환차들을 털어서 치우자는 숙제의 의미도 있었다. ^^
풍부한 아로마에 꽤나 질 좋은 차라는 건 인정하겠는데 내가 아삼에서 원하는 강렬한 찌리리~함은 좀 부족해서 감점. 순수한 아삼이라기 보다는 아삼에 실론이나 닐기리, 혹은 딤블라를 살짝 섞은 듯한 동글동글한 맛과 향이었다.
포동포동 전반적으로 볼륨은 있으나 날카로움은 부족함. 그냥 스트래이트로 마시기에는 좋지만 밀크티에서는 우유에 살짝 밀리는 감이 있어서 아쉬웠다.
헤로즈에서 사온 아삼이 개봉을 기다리는 관계로 역시 구매 불가능. 별로 구매의사도 없다. 가격대비 최고의 아삼은 압끼삐산뜨인듯. 입맛이 싸구려라 그런지 내 취향에는 그게 좋다. 그러나 걔 역시 지금 있는 아삼들을 다 치운 다음에나 가능. -_-;;;
명산다원 도인촌 2008 우전
작년에 여기에서 나온 우전을 맛있게 마셨는데 올해는 가을에 추가 구입한 것도 남았고 해서 그거나 털자는 의미로 사전공구 때 그냥 포기를 했었다. 대신 ㅇ씨의 구매를 대행해 줬더니 마셔보라고 네댓번 우릴 분량을 분양해줘서 감사하면서 접수.
근데 어라~ 이게 작년보다 훨씬 낫다. ㅜ.ㅜ
수색도 아주 좋고 맛의 두께나 향기의 그윽함이 작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 근래에 마신 우전 중에서 최고라고 하겠음. 그런데... 녹차 마시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입이 마르는 수렴성이 엄청 강해서 좀 신기했다.
봄에 비가 어떻게 오느냐에 따라 우전의 품질이 엄청 갈리는데 비가 많이 와서 웃자란 작년과 달리 올해는 기후가 아주 좋았던 모양. 사전 공구라는 게 무슨 미두판이나 선물거래도 아니고... 사전 공구 가격을 뻔히 아는데 지금 시장가를 주고 사기는 아까워서 그냥 포기하지만 가슴이 쫌 아픔.
한번 마실 분량만 남았는데 그래도 ㄱ양이 여름이 선물해 준 세작이 있고 또 작년에 산 우전도 아직 넉넉하니까 올해의 녹차 라이프도 행복하게 이어질 수 있겠음. ㄱ양 다시 한번 감사~ 잘 마실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