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입맛 까다로운 L양이 근래에 가본 한정식집 중에 최고라고 극찬을 해서 C양의 생일턱을 빙자해 정말로 오랜만에 머나먼 세검정까지 납시어줬다. 집에서 거기까지 가면서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3년 동안이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통학을 했나 내심 신기해했음. ^^;
주차장도 넓고 3층 건물 전체를 다 써서 그런지 조용해서 일단 그건 마음에 들었다. 음식점이 시끄러우면 밥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그런 나이가 된 고로 돈을 좀 쓰는 장소는 이렇게 조용한 게 좋다.
점심 시간에만 되는 19000원짜리 우의정 정식을 제외하고는 가장 싼 것이 28000원짜리 좌의정 정식. 당연히 그 위에 영의정, 대장금 등등 6만원에 육박하는 메뉴들이 있지만 우리는 저녁 시간대에 가장 싼 좌의정 정식을 채택.
먼저 음식 맛을 얘기하자면 나쁘지는 않다. 이 집은 정통 한식이라기 보다는 살짝 퓨전 느낌을 가미했는데 완전 퓨전이면 내게 X표를 받았겠지만 아주 살짝 현대성을 가미한 정도라 거기엔 불만이 별로 없었다.
팥앙금을 낸 죽, 메밀 전병과 나온 구절판도 깔끔했고, 청포묵 무침이나 잡채도 괜찮았고 활어회, 전, 보쌈, 너비아니, 복튀김도 나쁘지 않았다. 매생이 두부는 특별히 맛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건강에 좋으려니하면서 먹어줬음.
다만 탕이 메뉴에 있는 매생이탕이 아니라 계절에 맞게 삼계탕으로 나왔는데 삼계탕을 먹지 않는 나와 L양은 그냥 패스. 매생이는 11월부터 2월까지가 제 철이니 당연한 변경이긴 하겠지만 바뀐 메뉴에 대한 안내가 되지 않은 것은 분명 감점 대상이다.
그리고 음식이 너무 심하게 빨리 나온다. 사무실 모인 식당가의 점심 손님도 아닌데 코스 하나하나를 천천히 즐기게 해줘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쏟아져 나옴. -_-;;; 나중엔 참다참다 좀 천천히 달라고 하니까 그제야 살짝 느려지긴 하는데 코스별로 앞접시를 바꿔주지도 않고 이런 밀어내기 서비스는 가격에 비해 꽝이었다.
이전에 두어번 와봤다던 L양이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하는 걸 볼 때 위층에 있는 단체손님때문에 서비스 여력이 모자라 그러지 않을까 싶긴 해도... 그 정도 상황을 대처하지 못한다면 고급 음식점이라고 절대 할 수 없음.
구이와 보쌈이 나온 뒤 대나무통에 찐 찰밥과 강된장, 밑반찬, 게무침이 나왔는데 정갈하고 깔끔하다는 표현을 쓰면 딱일듯. L양의 장담대로 확실히 조미료는 적게 쓴 것 같다. 식당 음식을 먹고나왔을 때 특유의 그 갈증과 텁텁함이 거의 없었음.
다만 화학 조미료와 강한 간에 익숙하고 그걸 즐기는 사람들은 여기 음식, 특히 나중에 나오는 반찬류가 밍숭맹숭 맛없다는 소리도 할 것 같다. 그러나 MSG의 맛을 아주 싫어하는 나나 L양 같은 인종들에게는 환영받을듯.
디저트로 산수유차와 수수찰떡이 나왔는데 배가 엄청 불렀음에도 떡만 좀 더 달라고 해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산수유차는 내겐 너무 달았음.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현저하게 떨어졌지만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고 조용했다는 것, 그리고 물대신 준 차(이름을 알고 있는 거였는데 잊어버렸다. ㅠ.ㅠ 겨우살이 차던가?) 맛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그냥 용서(?)하기로 했음.
강북 근처에서 점심 모임이 있으면 다시 한번 시도를 해봐줘야겠다. 그때도 같은 서비스면 X. L양 말처럼 실수였으면 추천 장소가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