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아로마티코 | 시공사 | 2010.7.?-8
납이나 돌로 금을 만들려고 헛고생을 한 고대인들이나 중세인들, 금을 만들려다 우연의 일치로 수은 등을 발견하게 되는 아랍인들. 신비스런 마술을 연마하고 연금술사의 돌을 만들어내려는 마법사들의 모습.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연금술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들이다. 수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 만화에서 묘사되어 왔기에 이런 모습은 솔직히 떼어내기 힘들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어 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이 일부(근데 일부보다는 많을 것 같다) 사기꾼들 기만과 무식한 대중들의 상상과 편견이 결합된 결과이고 화학이나 의학의 발전에 이 연금술이 공헌한 부분은 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의 부산물이나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맥이 끊길 줄 알고 있었던 이 연금술의 전통이 현대에도 남아서 계승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뉴튼에 대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증명해내는 이 천재가 연금술이라는 허접한 것에 빠져서 남은 인생을 허비했다는 평가를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뉴튼을 훌륭한 연금술사이자 과학자 자체로 평가하고 있다는 게 상당히 이채로웠다.
연금술사가 곧 과학자였던 근대까지 연금술의 이런 측면은... 아만다 퀵이라고 역사 로맨스 동네에서 날리는 미국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 연금술에 조예가 있거나 관심이 있는 -최근작은 아예 연금술사였음- 주인공을 간간히 등장시켜왔기 때문에 익숙했다. 그녀의 작품 속에 묘사되는 연금술은 일종의 과학이었고 그 등장인물은 마법이나 금보다는 실질적인 면과 학문적인 열정에 불타는 모습이었다. 이 책에서 연금술은 실제로 이렇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일치해서 개인적으로 더 재미있었다.
오늘날 현대 연금술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하지만 역시나 연금술사 답게 아주 신비스럽게 퇴장한- 풀카넬리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된 게 즐겁다.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앞으로 시간 날 때 이 인물에 대해 여러가지 탐험을 좀 해봐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고 있음.
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개인적인 것을 간단히 끄적이자면... 이 연금술사들은 헤르메스의 후예들이라고 하며 그들의 비의나 신비의 안내자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 신을 상징화시키고 있다. 어린 시절 그리스 신화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고 매력적으로 느낀 그리스 신이 바로 헤르메스였었다. ㅋㅋ 뭐랄까... 간난아기 때 아폴로의 양떼를 기가 막히게 도둑질한 일화부터 시작해서 정형화된 신의 모습에서 살짝 벗어난 그 이단자적 모습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헤르메스를 주인공으로 해서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도 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팬픽이었겠지. 그다지 열렬하지도 많지도 않은 내 팬질과 최초의 팬픽 주인공답게 딸려있는 학문(이라고 해주겠음)도 내 취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