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생일에 간 사찰음식 전문점.
엄청난 고기, 회 매니아로 늘 그런 쪽으로 메뉴를 정하던 친구인데 얘도 늙나보다. 그냥 4지선다의 구색으로 끼워넣은 여기를 선택했음.
나를 위해 기록을 해놓자면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가서 좀 걸어가다가 스타벅스 골목 안 주택가에 있다.
무늬만 채식이거나 사찰음식점인 곳이 많은데 여기는 분위기부터 제대로 내고 있다.
요즘 나오는 요란한 노란색에 얄팍한 놋수저가 아니라 은은한 빛깔의 묵직한 놋수저들을 쓰고 식기들은 다 연꽃 문양. 그리고 컵도. 9번 덖어냈다는 연차를 주는데 정말 9번 덖어 냈는지는 보장 못하지만 최소한 3번 이상은 덖어냈다는 건 내가 보장. 3번 덖어낸 것이 집에 있는데 얘보다 훨씬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난다. 나 혼자 한 주전자 이상 마셨다. ^^;
음식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육류와 오신채를 쓰지 않은 비건식의 문제가 몸에는 좋으나 맛이 좀 별로라던가, 그 맛과 조리법이 다양하지 않다거나, 먹었으나 포만감이 적어 괜히 허하게 느껴진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 만족감이 떨어지는데 여긴 그런 것을 많이 해결한 것 같다.
비건= 저 푸른 초원이 풀풀~을 아무래도 떠올리게 되는데, 생 것, 데쳐서 무친 것, 구운 것, 튀긴 것 등이 골고루 나오고 백년초, 쑥, 호박 등을 이용해 색감을 화려하게 만들어서 시각적으로도 식욕을 돋군다. 식재료도 일반적인 풀 종류인 잎채소 외에 호박, 가지, 마 등 근채류와 열매류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곡류와 버섯, 견과류, 또 채식에서 빠지면 안 되는 두부까지 푸짐하게 잘 나온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건 -요즘 꽤 비싼 한식당에서도 많이 느끼는 불만인데- 미리 구워놓은 전을 덥혀서 나오지 않고 바로바로 구워낸 가장 맛있는 상태로 나와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소금이 정말 정말로 맛있다. 소금만 맛있어도 음식 맛의 반 이상은 해결하고 간다고는 하지만 한국 음식점에서 나온 찍어 먹으라고 나온 소금 맛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는데 여긴 먹으면서 감동했음. 내 친구는 고기 먹을 때 그걸로 찍어 먹겠다고 사갖고... 난 ㅅ양이 사다 준 암염이 있어서 이번엔 패스. 다음에 가면 사와야겠다.
먹고 나서 포만감은 그득하나 속은 부대끼지 않는 가장 이상적이고 기분 좋은 상태를 만끽하며 돌아왔음.
아이들 데려오는 사람들을 위해 만원대 어린이용 코스가 있고, 어른들 용으로는 23000원짜리 산채 정식부터 시작. 여기에 10% 부가세가 붙는다.
가격대는 좀 있으나 하나하나 나오는, 손 엄청 많이 간 음식들을 보면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됨. 서빙하는 분이 조용조용히 설명도 잘 해줌. 추천.
점심은 12시부터 3시까지. 저녁은 6시(던가???)부터 9시까지. 밥 먹는 데 1시간 반은 걸리니까 넉넉히 잡고 예약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