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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타

키스 & 크라이... 이동훈

by choco 2011. 8. 15.
최근 몇 년 간(.... 아니 양심적으로 내가 쓴 걸 제외하고는 평생 처음인 것 같다.  ^^;) 유일하게 띄엄띄엄이나마 챙겨보던 오락 프로그램.

김연아를 좋아하긴 하지만 빙판 위에 서지 않은 김연아 선수는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고로 그녀 때문은 아니고....  내가 이 프로그램을 챙겨본 건 이동훈 선수 때문이다.

김연아 이후 피겨를 보기 시작한 일부라고 믿고 싶은 --; 열혈 팬덤은 그 이전의 피겨 얘기를 꺼내면 오랫동안 피겨를 본 게 벼슬이냐고 파르르 떠는데, 오래 본 게 벼슬은 분명 아니지만 죄도 아니지.  

어릴 때 아주 잠깐 피겨를 배웠던 -이제야 밝히는 나의 흑역사.  정말 못 했다.  잘 하지도 못 하면서 고집은 세서 말도 더럽게 안 들었고. ㅋㅋㅋ- 터라 초딩 때부터 피겨를 봐왔던 터라 2002년 미국의 소금 운동회 때 정이 똑 떨어질 때까지는 국내에서 열리는 경기도 간간히 쫓아다니고 했다.  (제냐 꼬꼬마 때 직접 봤었다는 건 자랑. ^^)

많은 피겨 팬들처럼 2002년 그 난리통에 정이 똑 떨어져서 한동안 피겨를 떠나 있다가 그나마 살살 이 바닥으로 나를 잡아끈 게 이동훈 선수였다.  김연아 팬덤이 들으면 폭발하겠지만 연아양이 '점프는 잘 뛰지만 몸이 너무 딱딱한' 그냥 기대는 해볼만 한 선수이던 시절 이동훈은 한줌도 안 되던 피겨팬들에게 정말 가슴이 두근거리게 해줬다.

우리도 드디어 세계 선수권이나 그랑프리를 느긋하니 남의 잔치로 보는 게 아니라 X줄은 타지만 우리 선수를 보면서 응원할 수 있겠구나.  피겨를 본 이후 처음으로 그런 기대를 갖게 해준 게 바로 이 친구였다. 

그런데 주니어 그랑프리 4위를 정점으로 그 이후는.... 이하생략.  한숨만 푹푹.  재능으로 따지자면 연아보다 나았지만  운동 선수에겐 재능 만큼이나 독한 '악'이 필수 탑재요소라는 걸 보여주는 전형적인 케이스,   한마디로 게으른 천재였다.  나중엔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많았지만 정말 아주 조금만 손질을 하면 눈에 확 띄게 달라지니 포기도 안 되는, 팬들에게는 정말 애증의 존재였다.  연아양 이후 세대라면 정말 우리는 또 다른 두근거림을 갖고 있었을 텐데 라는 안 된 마음도 들긴 하지만.... 그 정도 재능이라면 정말 독하게 죽을 각오로 덤볐으면 김연아 선수처럼 스스로 새로운 길을 뚫을 수도 있었는데. 

차라리 소식도 모를 때는 그냥 잊고 살았는데 TV에서 여전히 멀쩡하게 잘 타는 모습을 보니까 다행이다 싶으면서 속이 부글부글.  그러면서 이왕이면 1등을 해서 꼭 아이스쇼에 서길 기도했다.

이 친구가 재능에 비해서 독한 면이 한량없이 부족하지만 (신은 이럴 땐 정말 공평한 듯. --;) 운도 참 안 따르는 게 몇 년 전 목동에서 불 나서 취소된 아이스쇼에 데이비드 윌슨이 안무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 시즌 쇼트 프로그램으로 받아온 건데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드라마틱이 부족한 이 친구의 약점을 잘 메워주면서 눈에 확 들어오는 걸작.  그거 보면서 난 정말 윌슨 만세를 불렀었다.  그런데 지붕에 아스팔트 슁글 공사하면서, 절대 피지 말라는 담배를 꿋꿋이 핀 것도 모자라 꽁초를 지붕에 버린 무개념 때문에 쇼는 취소되고 얘도 그냥 공중에 붕.  --;

그때 큰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의 박수 갈채와 관심을 받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그 뒤에 펼쳐진 행로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부상이 왔더라도 그 기억으로 좀 더 독하게 버텨주지 않았을까 등등의 해도 소용없는 만약을 참 많이 생각했었다.  코치인 라파엘이 프로그램 좋다고 다음 시즌에 한 해 더 쓰자고 했는데 CD를 잃어버리는 본인의 삽질까지 겹쳐서(이 얘기 듣고 뒷목 잡았음.) 그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한두번 보여지고 사라졌다.  그리고 이 친구도 우여곡절을 계속 겪고 있고. 

그나마 무덤덤한 나도 이 정도인데 나보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이 사랑한 팬들은 정말 이 프로그램 보면서 애증에 몸부림을 쳤을 듯.

남자라고 해도 현역 선수로 뛰기엔 살짝 많은 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포기하기엔 어린 어정쩡한 시기인데 이번 1등과 아이스쇼로 그때 불 때문에 무산된 쇼를 포함한 그동안의 악운 + 본인이 자초한 삽질도 모두 날려버리고 한번만이라도 다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  하는 건 하나도 없이 규정만 따지는 빙연도 정신 좀 차려 어떻게든 애를 좀 살려주면 좋겠지만 후자 쪽은 가능성이 전혀....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