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양가는 없으나 어쨌든 할 일이 꽤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내내 일하기 엄청 싫어~의 모드.
사실 정상적인 예년 상황이라면 슬슬 뇌에 기름칠을 하면서 빡세게 돌릴 워밍업을 시작할 시즌이지만 올해 4/4분기 장사는 아마도 말아 먹을 것 같다. 그동안에도 온갖 이유로 이메가 일당들을 욕하고 씹어왔는데 이제는 우리 부친이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이를 가는 것처럼 누가 들어도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가 생기고 있음.
보통 이 시즌이 되면 연말에 남을 예산을 털어버리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미친듯이 교육을 만들고 홍보물 입찰 공고들이 쏟아져 나와야 하는 게 정상. 그리고 대충 추석 전주부터 추석 직후까지 마감 일정이 줄줄이 잡히기 때문에 기획서 쓰느라 우리 바닥 작가들은 대목의 시작이다.
그런데 공기업이고 정부 기관이고 지자체고 다 돈이 없단다. --; 돈이 남아돌아서 말도 안 되는 기획까지 만들어내던 도@공사, 수@@공사 등등 온갖 공사들까지도 정말 필요한 교육물조차도 못 만들고 다음 해로 미루는 실정들. 이 모든 예산은 다 강바닥으로 고고씽~
이 가을 겨울 석달에 번 걸로 다음해 여름까지 먹고 사는데 올해야 작년 걸로 그럭저럭 때웠고, 봄 여름 장사는 그냥 어찌어찌 하던 만큼은 했지만 내년엔 뭘 먹고 살아야할지 솔직히 지금 심각하게 걱정 중. 이 나이에 부친에게 용돈 타서 쓰는 비극적인 사태는 없어야 할 텐데. --;
2. 이렇게 내년을 걱정하는 와중에도 내수 경기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해주고 있다.
주초에 잠시 돌아서 내 일생일대의 지름을 해버렸고, 오늘은 시계 고치러 갔다가 와인 세일에 낚여서 또 거금을 질르주고 왔음. 근데 낚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게 정말 이렇게 많이 세일을 하는 건 워낙 드문 일이라... 로랑 페리에 샴페인만 사지 않았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로랑 페리에가 현지 가격보다 아주 조금 비싼 수준으로 나오는 건 내 일생에 처음이라는 핑계로 가책을 달래고 있음. 실은 이 지름은 부친의 상환은 하지 않을 IMF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 그 지원금 획득을 위해서 주말엔 라끌렛을 할 예정. 전액까진 힘들겠지만 그래도 한 30은 하사하시겠지? (아멘)
이제 당분간은 절대 절약 모드로 돌입해야 함. 이미 한 약속을 제외하고 외식 금지. 인터넷 쇼핑도 금지. 이후에 나를 만나고 싶은 분은 집으로 오시길~
3. 이건 좀 된 지름인데 도착은 며칠 전에 했으니 그냥 묶어서 풀자면 Melisa 신발 강추!
니만 마커스가 미친듯이 세일을 할 때 동생은 레인부츠를 샀고 난 레인부츠 재질로 만들어 비 맞아도 되고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그리고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디자인 콜라보를 하고 있다는- 멜리사의 여름 구두를 샀다. 며칠 전에 ㅅ여사가 갖다줘서 그저께 개시를 했는데 이거 정말 대박!
약간 무거운 감은 있지만 미끄럽지 않고 바닥에 착착 달라붙는 게 정말 안정감이 있고 편하다. 겉으로 보기엔 가죽 같은데 고무라서 비가 와도 천하무적이고. 여름이라 밝은 베이지를 샀는데 겨울 걸로 검정힐이랑 무난한 색의 단화를 하나 더 살까 심각하게 고민 중.
바로 위에 절대 절약 모드라고 써놓고는 이게 뭔 소리? ㅋㅋ ㅅ여사 이삿짐에 딸려올 부츠랑 구두만 해도 몇컬래인지 각골명심을 해야겠음.
4. 월요일에 화가이자 도예가인 선배 언니에게 부탁한 작품을 받으러 정말 정말로 오랜만에 예고에 갔다. 마지막으로 갔던 게 개교기념일 때 동창회였던가? 버스의 번호만 바뀌었지 학교 가는 길이나 주변은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아서 옛 기억이 새록새록. 학교 앞의 육교도 여전하고 학교 안도 크게 변화가 없었다.
내가 졸업한 다음 해인가 이화 재단에서 다른 곳으로 팔렸는데 그 재단이 학교를 완전히 말아 먹고 근래에 다른 곳에서 인수해서 그나마 어찌어찌 돌리고는 있는 모양인데... 몇년째 땅만 파놓은 곳이며 흉물이 된 곳곳을 쳐다보니 마음이 좋지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 벌기 쉬운 장사가 사학재단이라는 건 우리 학교만 봐도 알 수 있음. 사학재단관련자들이 목숨 걸고 뛰쳐나와 촛불 들고 설친 게 이해가 되기는 한다. 땅 짚고 헤엄치는 이 앗사리 판을 뺏기게 생겼는데 눈이 안 뒤집힐 수가 없겠지.
마침 카메라를 챙겨가서 학교 사진도 몇장 찍어왔는데 올리는 건 다음에~ 계속 그 판에서 놀고, 학교와 관련을 가졌다면 그날 만난 선배처럼 정이 다 떨어지고 남은 감정은 애증뿐이었겠지만 최소한 예고에서는 볼꼴 못볼꼴을 보지 않았기에 그리움이 많이 남는 곳이다. (그래도 돌아가라면 절대 사양. 고교 시절은 일생에 단 한번으로 족함.)
5. 동창회 얘기가 나온 김에 떠오른 추억이랄까 씁쓸한 기억 하나.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고 동창회는 학교 강당에서 전체 동문이 다 모여서 엄청 크게 했었다. 여기저기서 날리는 선배들도 많이 오고 스폰도 많아서 경품이나 상품이 정말 빵빵. 참가자 중 반수 이상이 하다 못해 비누라도 타갈 수 있다. (타가지 못하는 소수 중 한명이 나. 뽑기의 저주를 받은 몸인듯 --;)
그런 경품이 아니더라도 볼만한 것도 많다. 송창식 선배가 신청곡을 그 자리에서 받아주면서 노래를 불러준다거나 하는 건 어디에서도 가질 수 없는 특권. ㅎㅎ
그리고 워낙 있는 집이 많다보니 일단 입장할 때 기본으로 주는 것들도 꽤 괜찮은데 어느 해였던가는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쿠키랑 미니 케이크를 주문해서 1명씩 다 줬었다. 그걸 먹으면서 구경하라는 건데, 그걸 꼭 다시 가서 더 받아오는 사람들이 있음. 아줌마면 그냥 아줌마라서 그러려니 하겠지만 내 또래들. 거기서 그 과자 못 사먹을 형편인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텐데 정말 저러고 싶나? 싶은 것이... 눈살 찌푸려지던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나는군.
예전에 성남 아트센터에서 성남시장이 돌리던 떡을 줄 다시 서서 2번씩 받아가던, 번쩍번쩍 럭셔리 아줌마들도 그렇고 그때 그 애들도 그렇고... 아마도 그래서 잘 사나보지. 그러나 저 절약(?) 정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군. ^^; 그래서 못 산다고 해도 할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