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Book of Saladin (1998)
화장실에 비치해놓고 정말 순수하게 거기서만 읽었는데... 내가 거기서 보내는 시간이 꽤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준 책. ㅋㅋ
이 책은 내 동생의 컬렉션이다. 꽤 오래 전에 사놓고 재밌다고 내게 추천했지만 전기류는 땡기지 않아서 무시하다가 충동적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추천할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살라딘.
아주아주 어린 초딩 때 계림인가 계몽사에서 나오던 문고판 중에 '십자군의 기사'라는 책이 있었다. 거기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왔던 인물이고 또 거기서 정말 멋지게 묘사가 되어서 호감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이제 어른의 시각으로 또 다른 살라딘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 무역센터 폭파 사건 때 BBC 대담 프로에 나온 패널이 아랍엔 문화나 역사가 없다는 무식한 소리를 한 것에 분노해서 타리크 알리가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의 의도나 목적에 충실한 책이다.
가끔씩 지나치게 의도가 드러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아랍의 마지막 전성기 시대의 문화와 생활, 그리고 멋진 인물을 묘사하는데 성공했다. 어지간한 생활사 서적보다 토지나 혼불을 읽는 게 식민지 조선의 사회상을 파악하는데 더 낫듯이 딱딱한 역사서나 문화 안내서 등을 쌓아놓고 읽는 정도의 이해가 가능해진다.
작가가 소설가라 그런지 딱딱한 전기가 아니라 소설 형식으로 픽션을 가미해서 오밀조밀 재미있게 구성을 해놨다. 빤히 아는 한 남자의 인생이건만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저건 또 어디서 연결될까 하는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베일에 감춰지고 기록조차 남지 않는 여성에 대한 부분도 상상을 가미해서 살려놨다는 것도 독특하다.
화자는 살라딘의 서기인 유대인 이븐 야쿠브. 주인공은 살라딘. 비중있는 여자는 그의 두번째
왕비인 술타나 자밀라.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가신들과 친척들.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고 분열하는 아랍인들.
원수가 된 현재와 달리 이 안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은 프랑크족으로 대표되는 유럽인들과 맞서는 우호적인 협력자들이다. 작가 자신도 말미에 썼듯이 당시 그렇게 우호적이었던 유대인과 아랍인의 사이가 이렇게 철천지 원수가 되어버린 것은 역사의 또 무슨 아이러니인지.
아랍권에 대한 강한 고정관념에 박힌 서구인들은 이걸 작가의 순수한 픽션이고 이건 진정한 아랍이 아니라고 할 것이고, 또 아랍 정통주의자들은 타리크 알리를 여러가지 이유로 비난할 것 같다. 그러나 나같은 나이롱이나 방관자들에겐 먹히는 줄타기에 성공했다.
루스벨트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죽지 않고, 그와 사우디 국왕 사이에 오갔던 논의 -독일땅 한덩어리를 떼어내어 유대인들에게 줘서 나라를 만들게 하자는-가 그대로 현실화가 되었더라면 지금 세계사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만약'이란 가정이 내내 머리를 돌았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아랍인들 입장에선 X은 딴 놈이 싸고 치우는 건 자기들더러 치우라고 던졌으니 황당하고 열받을 만도 할듯.
이스라엘 민족의 귀환을 유대인과 그들의 후원자들은 성약의 실현이라고 믿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자연이란 순리에 어긋난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이론이 더 맞는 것 같다.
오늘부로 화장실에는 일본 역사를 바꾼 여인들이 들어갔는데 걔는 과연 며칠 안에 끝낼 수 있을까? ㅋㅋ
책/인문(국외)
술탄 살라딘
타리크 알리 | 미래M&B(미래엠앤비) | 2006.10. 추석 연휴 중간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