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휴일 전날의 공연 관람은 왠지 마음이 푸근해진다. ^^
연극은 그닥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서 어쩔까 꽤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거듭된 LG 아트센터의 추천 메일에다가 이 연출자의 연극이 이전에 국내에서 아주 평이 좋았던 기억,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템페스트라는 걸 떠올리면서 과감히 질러봤다.
올 가을에 공연 운이 좋은 건지 결론은 만족~
세익스피어의 비극들이 주는 그 비감미랄까 감정을 뒤흔드는 느낌도 괜찮지만 난 기본적으로 십이야며 이척보척, 뜻대로 하세요 등 그의 희극을 참 좋아한다. 어릴 때는 그저 그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봤던 내용들인데 지금 읽어보면 어쩌면 그렇게 촌철살인의 표현과 해학이 넘치는지. 수백년동안 생명력을 지켜온 힘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통찰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의 수많은 희극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고 그래서 뮤지컬 등등 여러 장르로 접했는데 이 템페스트는 세익스피어 스토리의 기본 골조를 유지하면서도 아주 과감하게 현대화시키고 상징화시키는 변형을 가했다.
배경은 원작 그대로 지중해의 한 섬이고 등장 인물은 전 밀라노 공작이었던 프로스페로와 정령 에이리얼, 그의 딸 미란다. 대척점에 있는 배신자인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그리고 왕의 아들인 퍼디난트, 양념인 악역 칼리반 등등. 각자 이름과 신분을 그대로 다 지키고 있다.
그런데 배우들은 다 러시아 사람들. 대사는 당연히 러시아 어~ 중간중간 등장하는 상징도 러시아의 색채가 물씬 씨 풍겨난다. 그런데 이 부조화가 전혀 이질감없이 녹아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감탄.
자기 몸을 완벽하게 컨트로하도록 훈련된 배우들의 연기력은 보는 그 자체로도 즐거웠는데 특히 정령 에이리얼 역의 배우는 왠지 반쯤은 인간이 아니게 느껴지는 그런 정도의 마성을 풀풀 풍겨줬다. 정령이라는 캐릭터 때문인지 내가 이전에 봤던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에이리얼은 여자 배우가 주로 했었는데 여기서는 남자배우였다. 그런데 남자에게 더 적역인 것 같다는 생각이 확 꽂히도록 정말 멋졌음.
자막으로 본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착착 감겨드는 완급 조절에 정말 다들 배를 잡았다. 세익스피어 시대에 그의 연극을 보던 사람들도 이렇게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한시름 세상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지. 4백여년이 지난 지금 21세기 현대인들에게도 변함없는 즐거움을 주는 세익스피어 옹에게 감사~
그리고 멋진 해석과 연출로 템페스트의 새로운 면모를 만나게 해준 연출자 도넬란과 그의 의도를 멋지게 소화해 표현해준 배우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래 전 로얄 세익스피어 극단이 한국에서 완전 정통 방식의 오델로를 공연 했었는데 템페스트라던가 다른 작품으로 한국을 한번 찾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이런 파격도 좋지만 간간히 정통적인 요리도 먹고 싶은데... 초청 좀 안 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