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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타

SNUGO 창단 연주 (2017.4.29)

by choco 2017. 5. 1.

엄밀히 말하자면 음악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잡담에 넣긴 또 애매해서 그냥 여기 기타에.

작년에 동기의 강권에 어어~하다가 어찌어찌 모교 졸업생 오케스트라에 적을 두게 됐다.  희귀 악기를 하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데, 그런 류의 부름이 꽤 많다. 그동안은 잘 피했었는데 그때 마감 직후라 잠시 주화입마에 빠져서 ok를 한 바람에 정말 두고두고 후회를 했음.

왜냐면... 너무 힘들어서. ㅜ.ㅜ

무릇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는 좀 널널하니 그냥 연주를 한다는데 의의를 둬야하는데 이 친구들을 보면 정말 서울대에 오는 애들은 성실함과 전투 본능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구나란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매주 3시간 연습도 난 힘들어 주겠구만 좀 더 연습하자고 4시간으로 늘리는데 아무도 불평을 안 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2시간 전에 모여서 파트연습도 함. (이건 난 패스. 파트연습까지 하면 난 본연습이 불가능함)

다들 노는 사람들도 아니고 학교나 직장에 다니면서 취미로 하는 건데도 저렇게 활활 불태우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탄성이....  아무래도 난 서울대 갈 사람이 아니었는데 정말 부모 잘 만나고 하늘이 도와서 갔구나란 깨달음도. ^^;;; 

굉장히 느슨하니 가벼운 마음올 갔는데 주변 분위기에 덩달아 나도 엄청 긴장을 하면서 연습을 하고 연주를 마쳤고 덕분에 피곤해서 부르튼 입술이 연주날 드디어 터졌다.  사실 제일 설렁설렁한 사람인데 보기엔 내가 제일 열심히 한 것처럼 보였음. ㅋㅋ

여튼, 연주는 객관적으로 볼 때 아마추어 치고는 꽤 잘 했음.  역시 어느 정도 수준은 열심으로 커버가 된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배웠음.

너무 힘들어서 가까운 시일 내에 또 하기는 무리겠지만 나름대로 배운 게 있는 연습과 연주였다.

20여년 만에 햇볕을 본 내 악기는 고물차가 굴러가는 것마냥 여기저기 삐걱삐걱 난리가 났고 대학교 때 맞췄던 케이스는 마지막 연습날 손잡이가 우지끈 부러져서 수명을 다 했다. 

뭔가... 은퇴한 선장, 혹은 항해사가 감춰뒀던 아주 낡은 우주선을 다시 꺼내 마지막 임무를 마치자마자 우주선이 더 이상 수습 불능으로 폭삭 내려앉은 그런 느낌이랄까?

케이스 가격이 아무리 싼 것도 보통 기십만원이라 그냥 손잡이 부러진대로 두려고 했는데 어제 심심해서 검색했더니 악기상에서 전시용으로 사용했던 케이스를 7만원에 팔기에 충동 구매.  오늘 배송했다니 내일 도착하겠구나.

악기는 삐걱거리는 거 다 조여주고 덤보랑 코르크 갈고 어쩌고 하면 기십이 아니라 백단위가 날아갈 상황이라 패스.  그냥 우리 둘 다 이렇게 삐걱이며 함께 사는 걸로.  오늘 온종일 충전을 해서 나도 겨우 살아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