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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기/주식

땅콩죽

by choco 2020. 2. 6.

내가 어릴 때 우리 모친이 종종 해주시던 내 어린시절 소울 푸드 중 하나.

미제 믹서기에 땅콩과 쌀을 넣어 드르륵 곱게 갈아서 끓여주던 뽀얀 땅콩죽은 내가 참 좋아하던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내 입맛이 변하면서 잘 먹지 않으니까 안 해주신 바람에(음식이란 결국 그 집에서 가장 ㅈㄹ맞은 인간의 입에 맞출수밖에 없다. 모친에겐 내가 가장 ㅈㄹ맞은 입이었음) 내 동생들은 아마도 기억하지 못할 나만의 맛이다.  컨디션과 입은 따로 노는지 간만에 땡기기도 하고 해서 어릴 때 기억과 요리책의 레시피를 찾아서 해봤는데.... 무지하게 귀찮고 손이 많이 간다.  땅콩을 불려서 껍질을 까는 게 진짜 보통 일이 아니네.  -_-a

장담하는데...  우리 모친은 절대 땅콩껍질 같은 거 불려서 일일이 안 벗기고 끓였을 거라는 데 만원, 아니 10만원도 걸겠음.  시장은 물론 많은 가정에서 아직도 멧돌을 돌리던 시절에 이미 믹서기로 땅콩과 쌀을 갈아서 죽을 끓여주고, 가스렌지 쓰는 집도 그닥 많이 없던 때에 일본 출장가시는 이모부께 부탁해 전기오븐을 들였고, 차례상에 올라가는 산적과 생선도 일찌감치 오븐에 구웠을 정도로 장비 활용과 잔머리에 능통한 우리 모친이 그런 귀찮은 작업을 거쳐서 내게 시시때때로 땅콩죽을 끓여줬을 리는 없다. 

내 아련한 추억 속에서 땅콩과 불린 쌀과 물을 넣고 믹서에 곱게 갈아서 끓이던 과정만 떠오르는 걸 보면 아마 생땅콩을 그대로 갈았거나 볶은 땅콩 껍질을 후루륵 까서 끓이셨지 싶다.  껍질 벗긴 땅콩을 사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정하는 게... 매년 겨울에 우리 집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강정을 가내수공업으로 제조했는데, 껍질 벗겨놓은 땅콩은 소위 쩐내가 난다고 남대문 시장에서 볶은 땅콩을 왕창 사와서 나나 내 동생에게 껍질 벗기는 노역을 시키셨으니 죽 끓이는데 그걸 쓰지 않았을 것 같다.

여튼 다음에 또 땅콩죽이 생각나면 그때는 그냥 볶은 땅콩이나 유기농가게에서 껍질 벗긴 볶은 땅콩을 사다가 기억 속 엄마 방식대로 끓여봐야겠다.  내가 어릴 때 있던 그 미제 믹서기... 걔도 진짜 오래 쓰다가 내가 대학 간 즈음에 생을 마감했는데... 내가 대학 때 사서 아직도 쌩쌩한 내 와플기며 바베큐 그릴 등을 보면 확실히 예나 지금이나 미제가 모양새가 없어서 그렇지 튼튼하긴 함.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