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시국이라 일본 만화도 불매를 해야함이 마땅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체제 선전이 아닌 문화는 별개로 둬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갈등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는 상태지만 내 개인에게 대체로 문화는 별개로 두자는 쪽이 승리하고 있다.
로스쿨 학비를 위해 호스티스를 했던 경력의 신출내기 여자 변호사의 성장기.
아주 캐릭터가 독특하다. 업소에서도 폭탄 제거 내지 분위기 땜빵용의, 잘 봐줘야 풀꽃 정도의 미모. 어찌 보면 뻔뻔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친화력. 여자 주인공에게 꼭 필요하지만 지나치지는 않은 공감력까지. 특이하면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카이세 라쿠코는 엄청난 취업난에 잠깐 얼굴만 봤던 손님이었던 변호사 사무실에 뭉개기로 간신히 취업에 성공. 여기서 유능한 선배 변호사 쇼지를 만나고 그를 목표로 열심히 일을 하면서 핑크빛이 되려나 하는 기대를 감질나게 풍기지만 연수원 동기인 부잣집 도련님 아카보시 변호사의 구애에 결국 그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일에 몰두해 결국 차이고 뭔가 다시 알쏭달쏭 쇼지랑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아련한 기대만 남기며 오픈 엔딩.
그런데 이런 건 너무 법 위주로 가는 만화의 양념이고 내용은 다양한 재판과 거기에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아주 가끔은 멋지게 성공도 하는 라쿠코 변호사와, 변호사와 얽힌 의뢰인들의 이야기가 메인이다. 인간 군상의 다양함과 그 다중성, 한국과 너무나 비슷한 일본 법조계의 분위기를 보면서 씁쓸함도 많이 들긴 하지만 무겁지 않게 잘 끌어나가고 있어서 재밌게 봤다.
중간에 한번 나왔다가 사라지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뒤에 꼭 필요한 자리에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걸 보면서 옵니버스 식이면서도 참 탄탄한 구성을 했구나 하고 감탄.
주인공과 별개로 내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물은 마지막 사건, 너무 몰입하다가 아카보시에게 차이게 되는 계기인 건강식품 부작용 집단소송을 이끄는 사카사키(던가?) 변호사. 중후반 쯤에 라쿠코가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을 때 상대 변호사로 등장해 라쿠코를 엄청 무시하고 기를 죽이는 쟁쟁한 거물 여자 변호사인데 정말 멋짐. 이 변호사가 등장할 때 항상 배경에 거대한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는 그림을 그려넣던데 정말 적절했다. ㅎㅎㅎ 이 아주머니의 등장 장면만 나중에 다시 찾아볼 정도였음.
만화가 조금 괜찮다 싶으면 다 드라마로 만드는 일본이니 이것도 분명히 드라마로 있을 텐데 저 변호사가 나오는 부분은 한번 찾아보고 싶네.
이 만화의 작가인 아소우 미코토는 전작에서도 멋진 남주 둘과 밀당을 시키다가 끝내 둘 다 안 되는 엔딩으로 갔다던데 이번에도 그 특기를 발휘한 모양. 많은 팬들처럼 아카보시가 아깝긴 하지만... 쇼지 선생이랑 되어도 나쁠 것 같지는 않으나 쇼지 변호사가 과연?
보통 이런 식의 오픈 엔딩은 두 주인공에 대한 핑크빛 기대감과 여지를 남기는데 이 만화의 경우 둘이 눈 맞아 결혼까지 갈 확률은 잘 봐줘야 반반이지 싶다. 그래도 큰 상관없고 둘 다 각자 알아서 잘 살 것 같다는 게 이 만화의 특징이랄까 매력이지 싶기도 함.
앞으로 라쿠코와 쇼지의 협업이 어떨지 만화로는 볼 수 없지만 내 상상 속에선 가지를 뻗어가고 있다.
가상이란 걸 알면서도 때로는 웃고 때로는 열 받거나 속상해 하면서 몇년 동안 즐거웠다.
굿바이, 랏코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