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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국내)

35.6의 고구려자

by choco 2020. 5. 1.

유태용 | 서문문화사 | 2020.4.29

아이패드를 산 후로 요 수 년간 독서량이 처참할 정도로 바닥을 향해가고 있다.

디지털 기기가 얼마나 텍스트에 대한 집중력을 뺏어가는지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기대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흡입력으로 마지막 쪽까지 달리게 하는 책이 있다. 이게 바로 그 중 하나.

2000년에 발굴된 고구려의 자 하나를 갖고, 그 발굴 과정, 고구려의 자라는 걸 추론하고 증명해 나가는 과정을 한권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사실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과정이나 반전이 없음에도(이건 학자적 자세로 아주 건조하게 사실 위주로 적어나간 지은이 때문? 혹은 덕분인듯) 읽는 내내 다음엔 어떤 내용이 나올까 하는 묘한 끌림이 있다.

세토막 난 나무 자 하나로 이렇게 꽉꽉 채운 책 한권이 가능하다는 게 좁고 깊게 파들어가는 학문의 매력이지 싶음.  미용실에 있던 2시간 여동안 거의 다 읽고 밤에 집에서 마무리~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에피소드를 하나 만들 거리를 건져서 그건 또 나름의 소중한 수확이고. (잊기 전에 메모를 해놔야겠다. 이거 다 쓰고 나면 바로.)

2000년에 발굴된 이 자 덕분에 고구려의 자는 없었다는 일본 학자들의 뻘소리도 쏙 들어가버리고 여러가지 가설들의 증명이 됐다는 점에서 고고학자들이 죽어라 땅을 파고 흙을 체에 치는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게 이해가 됨. 더불어 일본의 신석기 시대를 창조해냈던 그 사기꾼 고고학자나 거북선의 무기를 발굴했다고 우긴 우리나라 누군가도 왜 그랬을지 심정적인 공감은 간다.  한번 성공하니 그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았겠지.

여튼, 굉장히 의의가 큰 발굴인데 내 기억에 이 사건이 없는 걸 보면 언론의 조명은 상대적으로 적었지 싶다. 

실체의 90% 이상이 감춰진 고구려... 좀 더 많은 기록과 유물들이 나오면 좋겠다.  사리사욕(^^)과 상관없는 고구려 역사 애독자로서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