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감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주듯 아슬아슬하던 이마트는 결국 날아가고 아직 대체 촬영처는 정해지지 않은 이 아수라장 가운데 당연히 대본의 대대적인 수정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 플랜B 역시 언제 어떻게 날아갈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때 난 또 플랜C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야한다는...
섭외는 죽어도 안 되고 되던 섭외도 날아가고 있음에도 내일까지 3편을 다 수정해 넘겨야하는 이 난리통 가운데 잠시 딴짓을 끄적하는 건 교회를 바라보는 애잔함이랄까... 개인적인 단상들이 흩어지기 전에 좀 적어둬야하지 싶어서이다.
일단 난... 교회의 용어를 빌어자면, 교회가 불처럼 부흥하던 그 시대를 살아왔다. 동네 상가 꼭대기에 가까운 층 한켠에 있던 작은 교회에 빽빽히 사람들이 모이더니 어느날 근사한 건물을 짓고 거기에도 또 사람들이 꽉꽉 차는 걸 많이 봤다. 그게 한두개가 아니라 동네마다 너무나 흔하게 있던 일이었다.
그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애들은 친한 친구들 손목을 붙잡고 교회로 데려갔고 그 아이 역시 교회의 착실한 아이가 되어 또 다른 친구를 데려가는 가지치기랄까 새끼치기랄까. 여하튼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세포분열 수준이었다.
그 전도의 열성이 기억나는 게, 나랑 국민학교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한반이었던 친구 (우리 중학교는 당시 한 학년이 16반이라 이건 우연 정도가 아니라 정말 어마어마한 인연임)가 성당에 가고 싶다고 해서 성당에 데려갔었다. 나야 엄마 무서워 미사만 겨우 참석하지 성당 학생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 데려다만 줬지 딱히 챙겨주고 하진 않았는데 처음 성당에 온 그 친구에겐 뭔가 밋밋하고 외로웠지 싶다. 몇 주 나오더니 흐지부지 됐는데 바로 옆 교회에 다니던 다른 친구가 걔를 교회로 데려가서 거기서 아주 열심한 신자가 되더라는... 보니까 일단 교회에 나오면 그 새로운 신자를 지키기(?) 위해 데려온 사람부터 주변까지 찰떡처럼 달라붙어 엄청나게 챙기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 열심히 챙김 받고 관리 당하는 모습이 솔직히 쫌 부럽기는 했으나 너무나 열성적이고 뜨거운 그 활동은 내 에너지로는 감당 불가능이라 그냥 부러워하며 구경만 하는 걸로 끝~
고등학교는 미션 스쿨을 가긴 했고 예배와 성경 시간이 시간표에도 있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래도 이 학교는 학부모들이 무서워서였는지 학생들을 전도하기 위해 살벌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참 신실한 분위기이긴 했다. 교생도 여기로 나갔는데 매일 아침 다 모여앉아 기도하는 시간도 있었고. 학생 때 예배시간은 1시간 자는 시간이었는데 교생이라 차마 대놓고 쓰러져 잠자는 건 못 했던 아픔도 기억이 나네. ^^
내가 관심없는 쪽에는 좀 둔해서 몰랐는데, 그러고 보니 대학을 같이 간 아주아주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내 친구가 나를 전도하기 위해 많이 애쓰고 호텔에서 며칠 머물며 하는 비싼 교육도 보내주고 했었구나. 난 모든 종교에 열린 사람이라 아무 경계심 없이 가서 며칠 잘 먹고 잘 놀다 왔는데... 그거였었음. 그래도 완전 공짜로 미끼만 먹고 튀진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게 거기 행사에 몇번 재능봉사는 했었다.
각설하고, 지금 교회를 보면 한때 무지하게 인기있고 잘 나갔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그 시절에 맞춰 살려고 몸부림치는... 이제는 늙고 추해져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바람둥이 같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한때 날렸으나 잊혀진, 몇명 남은 팬들만 바라보는 스타?
그동안은 그래도 초딩 때 이것저것 얻어먹고 했던 옛정에 애잔함은 있었는데 지난 광복절을 기점으로 남은 정은 물론이고 없던 정도 다 떨어졌다.
그나마 독실하고 멀쩡한 내 주변 소수 신자들 앞에서 대놓고 욕하지는 못 하겠지만...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들까지 다 막장이면 막내딸이나 막내아들 한둘 정상이라고 해서 그 집안이 멀쩡하단 소리는 아무도 못 하지. 교회 스스로는 모르지만 이게 일반 국민들이 바라보는 2020년 한국 교회다.
역시나 그들의 용어를 빌려, 회개하기는 그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