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서순 | 뿌리와 이파리 | 2021.? ~ 2021. 5?
나왔을 때 예약 주문까지 하면서 산 책인데 모셔만 두다가 올해 겨우 2권부터 잡았다.
뒤늦게 이 책을 꺼낸 가장 큰 이유는 이 시대에 관한 자료 조사를 위해서였고 두번째는 좀 책다운 책을 읽으면서 뇌에게 일을 좀 시키자는 의도였는데 완전 재밌어서 목적과 상관없이 훌훌 즐겁게 읽어나갔다.
이 도널스 서순이란 학자는 굉장히 코스모폴리탄적인 배경을 가졌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그런지 이 책도 다른 유럽사 책과 달리 생략되기 일쑤인 남유럽이나 동유럽의 문화에 관한 내용들도 빠지지 않고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더불어 전체적인 내용이 다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유럽 문화사라는 아주 큰 그림 안에서 소소하고 꼼꼼한 내용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있다.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정보들~ 위키에서 본 틀린 내용들을 (위키가 항상 틀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깊이 들어가면 집단 지성의 한계가 있으니. 최근엔 의도적인 왜곡도 너무 많고) 정정해주고 싶은 의욕이 아주 살짝 일기도 했었지만 난 그 정도로 인류애가 넘치는 인간은 아니 고로 패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비롯해 책들을 읽으면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낼 거고 아니면 대충 오류가 있는 정보를 흡수하면서 살겠지.
각설하고, 183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내용의 흐름상 그 이전이나 그 이후도 약간씩 언급이 되긴 한다)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등 유럽 각국의 문화를 정말 세세하고 재미있게 그려주고 있다. 빅토르 위고며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등등 아는 이름도 많지만 모르는 이름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컸다.
원고료를 많이 챙기기 위한 작가들의 머리 쓰기와 (뒤마 아저씨 멋짐~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다시 읽으면 원고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행간에서 읽힐 것도 같음. ㅎㅎ) 그걸 방어하기 위한 신문사, 혹은 출판사의 대결은 흥미진진. 당시 작가들에게 권고되던, 성공적인 연재를 위한 조언은 20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똑같이 적용되는 걸 보면서 인간은 엄청 발전한 것 같으면서도 거의 변하지 않는구나를 새삼 느꼈고.
찰스 디킨스 등이 잘근잘근 욕하고 씹은 당시 언론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기레기는 한국 특산이 아니라 그 분포돠 역사는 유구하구나... 하고 아주 조금은 위로를 받았다. 기레기라는 단어는 아니지만 19세기 그들도 기자를 가장한 기레기들을 부르는 멸칭들이 다양하게 있었든듯.
그리고 이 책에서,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롤모델을 발견했음. 작가 외젠 쉬. 앞으로 난 이 아저씨처럼 캐비어 좌파로 폼나게 잘 먹다 잘 살면서 가는 걸 목표로 살겠다. 내가 바라마지 않는 삶의 궤적을 정말 그대로 살다 갔음~ 부럽다~ 멋지다~
정말 간만에 죽죽 빠져드는 즐거운 독서. 자료용 책들 좀 쳐내면 1권부터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