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하다가 발견한, 사다놓은 것도 잊고 있었던 책 중 하나. 어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런 게 엄청 많다. -_-;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같은 걸 두번 살 정도로까지 정신이 없진 않았다는 정도랄까.
재고 정리(?)를 하는 기분으로 제일 쉽게 읽힐 것 같은 이 책부터 잡았다. 종이도 두툼하고 그림도 많으니까. ^^ 잽싸게 한권을 처리하자는 목적을 놓고 봤을 때 아주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연인 관계였던 화가와 모델들의 얘기를 모아놓은 한 챕터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결국은 한권을 다 보고 잤을 정도로 흡입력있는 구성과 재미였다.
내용은 말 그대로 화가와 모델들의 얘기. 세 챕터로 분류를 해놨는데 첫번째는 연인 -당연히 불륜도 포함되는데... 상당수가 불륜이다. -_-;;; - 관계였던 화가와 모델들. 두번째는 부부관계였던 화가와 모델들. 이 경우도 상당수 화가들이 바람을 오지게 피워댄다. -_-+++ 마지막은 남녀로서 화학작용은 없지만 의미있는 관계의 화가와 모델들의 이야기. 주제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재미있는 소재를 쉽고 맛깔나게 풀어나가는 능력이 작가에게 있다. 전문가의 너무나 어려운 구름 잡는 얘기도, 어설픈 아마추어의 침소봉대도 아닌 적절한 수준에서의 사실확인과 해설. 글이 너무 쉽게 읽혀서 저자의 약력을 다시 보니까 신문기자다. 역시... 간결하게 사실 전달을 하는 능력은 신문기자만큼 훈련이 잘 된 직업도 없지.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스토리 라인과 연결되는 원화들이 적시적소에, 그것도 좋은 질의 인쇄 상태로 배치가 되어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그림이나 미술에 관한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대상이 되는 그림이 없거나 상태가 조악하면 집중도나 만족도가 확 떨어지는데 이 책은 그런 가장 중요한 기본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18000원이라는 가격이 전혀 높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게는 시인으로만 기억되던 로제티가 사실은 나름 의미있는 화가였다는 사실, 이 책의 표지로도 쓰인, 시시때때로 만나던 저 그림이 티솟이란 화가의 연인이었다는 사실 등등 여기서 새롭게 알게된 사실들이 쏠쏠하다.
내용과 상관없이 재미있었던 건 똑같은 그림이 포커스에 따라 얼마나 다르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 벨라스케스가 그린 어린 마리가리타와 시녀들이란 그림은 화가인 벨라스케스가 화면 안에 직접 등장하는 것으로 구구한 해설이 엄청나게 많은 그림이다. 그의 심리라던가 위치 등등... 그런데 여기선 벨라스케스가 아니라 모델인 공주와 그 가족, 주변 인물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해석이 이뤄진다. 이렇게 구구하고 다양한 얘기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소위 명화나 명작이라는 존재의 특권이자 기본 요건일 것이다.
역시 내용과 상관없는 상념 하나. 화가들이란... 예술을 한다는 인종 중에서 가장 자유롭고 인습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족속인 것 같다는 나의 오랜 선입관을 다시금 굳혀주는 산 증거들이 모여있는 것 같다.
[#M_more..|less..|화가들을 별로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전업 치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정의 틀 안에 온전히 박혀 있는 사람을 못 봤다. 피차 자유로운 성인이라면 예술의 동반자라고 하면서 제자랑 살거나 제자들을 연인으로 계속 바꾸는 건 내 알바 아니다. 나나 내 주변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남의 사생활엔 관여않는다는 주의기 때문에 그런 관계가 지인 관계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아내를 멀쩡히 두고도 애인을 데려나와 인사시키는 걸 보면... 미술하는 남자는 최대 10%의 예외를 제외하고 결혼 상대자로 0점이라는 지론은 점점 굳어가고 있음.
좋게 말하면 자유주의나 낭만적 성향이 강한 것이고... 사회의 언어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무책임한 바람둥이인 것이겠지. 그걸 갈라놓는 세상의 잣대는 그가 창조해낸 예술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바뀌는 거겠고. 걸작을 양산하면 예술혼이고 아니면 뭣도 없는 놈의 지X발X이나 오입질이 되는 건가?
어릴 때 읽은 위인전에서 램브란트의 아내로 등장했던 인물이 비혼 관계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하면서 기분이 좀 묘~함. 위인전 작가들은 역사 왜곡을 할 때 아무 거리낌이 없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