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Halloween crowd crush young victims: What we know - The Washington Post
아는 분의 단톡방에 올라온 글. 기자가 취재한 기사고 번역본 역시 공개한 글이니 그럴 리는 없겠으나 여기서 개인정보, 2차 가해 어쩌고저쩌고 찍찍거리면 대화는 사람하고만 하는 나는 바로 차단함.
내용과 함께 번역 파일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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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한국어로 바꿔 본다.
칼을 쥔 자들이 하도 무섭게 말을 해대니, 이런 번역을 한다는 것도 두 렵다. 하지만, 닉슨을 물러나게 만든 계기가 된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를 믿고, 번역을 해 본다.
번역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신다면, 위의 기사 링크로 가서 보시기를 희망합니다.
서울 - 할로윈 주말에 남한의 수도에서 압사 사고로 인해, 이제 갓 시작된 수많은 사람들 154명 (이것은 기사가 작성된 11/3에는 이랬겠지만, 11/16 현재는 158명이다.)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 중에서 거의 100명이 여성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성이 특별히 더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당국은 132명의 희생자들이 20대와 30대이고, 12명은 10대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당국이 완화한 이후 첫번째로 맞는 할로윈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활기찬 이태원 밤문화 지역을 방문하는 것을 택했다. 그들의 죽음이 만든 파장은 넓고도 멀게 퍼졌다. 적어도 26명의 희생자는 외국인 국적을 가졌다. 그리고, 남한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이제 겨우 시작했다. 그들 이야기 중에 몇 가지를 여기에 소개한다.
스티븐 블레시, 20세.
대학 1학년 때부터 스티븐 블레시는 한 학기를 해외에서 보내는 것을 꿈꿔왔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때문 에,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2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번 가을, 조지아주 마리에타에 있는 Kennesaw 주립대학 3학년인 스티븐 블레시는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그의 아버지는 워신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는 외향적이고 모험을 즐겼다. 외국으로 가는 이 기회는 그 아이의 첫번째 큰 모험이었다”
스티븐 블레시의 가족에 따르면, 스티븐이 토요일에 죽었을 때, 이 학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20살이다. 농구와 애완동물들 - 게코(gecko), 거북이, 소라게들 -을 사랑했다. 한 살 형인 조이처럼 이글 스카 웃이었고, 국제적인 비즈니스 계통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면서 대학에 진학했다.
스티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토요일 쇼핑을 마치고 집에 막 돌아왔을 때, 스티븐의 형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서 일어난 일을 보셨어요? 스티븐은 괜챦은 거예요? “(가족들은) 끊임없이 전화하고 전화하고 전화하고 전화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가족들은 스티븐이 남긴 것들을 정리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스티븐은 이 곳에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할 겁니다.”
최 보성, 24세.
한 친구가 그의 녹색 자켓을 수습했다. 최보성이 마지막으로 여자친구에게 텍스트를 보낸 것은 오후 9시였다. 이 날은 그의 24번째 생일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 두 명과 함께 생일을 기념하려고 했었다.
인파가 콘트롤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을 때, 최보성은 그 친 구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미국에 있었던 여자친구인 가브리엘라 파레스는 틱톡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걱정이 커져갔다. 그래서 그에게 전화도 하고 텍스트도 보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태원으로부터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그의 자매에게 가브리엘라는 전화를 했다.
그의 가족은 이 비극의 파장이 자기들에게도 미쳤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자매와 친구들은 서울 전역의 병원을 찾아 다녔다. 그는 녹색 자켓을 입고 있었고, 하얀 셔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 자켓과 전화기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친구에게 주었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서 있는 가브리엘라는 가장 나쁜 소식을 들었다. 그의 남자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지금 그녀는 남한으로 가고 있다. 그의 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태어난 날에 죽은 남자친구, 내 삶의 사랑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그레이스 라셰드, 23세.
호주에서 온 23살 그레이스 라셰드는 “파티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전염성이 강한 웃음으로 방 안을 밝혀주 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감 넘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사람. 그레이스의 가족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특별한 것을 만드는 데에 열심인” 조연출이었다고 말했다.
시드니 공대를 2021년에 미디어 아트와 프로덕션을 전공하며 졸업한 이후, 그레이스는 LinkedIn에 이렇게 썼다. 영화 제작사인 Electriclime에서 일했고, “질적으로 훌륭하고 혁신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전부 다”. 그레이스는 자주 여행을 떠났고, 최근 몇 주동안 발리와 멕시코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네이썬 태브니티라는 그레이스의 친구는, 이태원에서 압사를 당한 그 토요일에, 그레이스는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서울로 친구들과 나갔다고 틱톡 비디오에서 말했다. 그보다 앞선 비디오에서, 그레이스는 친구들과 함께 춤을 췄 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의 오드리 헵번처럼 옷을 입었다.
그레이스 자신이 지난 8월에 올린 틱톡 비디오에서, 그레이스는 24년 동안 모은 몇몇 조언을 공유했었다. “네가 떠날 때, 아무것도 너와 함께 가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 있는 이 시간을 만끽해라”
이 지한, 24세.
이지한은 올해 메이저 TV 시리즈에 첫번째로 선을 보이는 것으로 되었었다. 그 시리즈에 나올 그의 역할 분량 을 아직 다 찍지 못했다.“똑똑하고 밝고 진솔한 배우인 이지한은 우리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고 그의 매니지먼트 회사는 말한다. 그 시리즈를 방송할 MBC에서는, 그의 분량을 내보낼 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24살 이진한은 남한의 K팝 매니지먼트 회사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2017년 그는 높은 인지도를 갖춘 K팝 쇼인 “프로듀스 101” 경쟁에 참가했다. 이지한과 함께 그 경쟁에 참여 했던 가수들은 소셜미디어에 애도의 메시지를 올렸다. “미안해. 사랑해.”라고 또 다른 오디션에 참여했고 지금 은 Xenex의 멤버인 박희석씨는 말했다.
신 애진, 24세.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 서울 사무실에서 일하 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신애진(24세)씨는 서울 이태원으로 친구들과 나갔다고 아버지 신정섭씨 는 전했다. 이른 토요일에 커피를 함께 마신 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서울 삼성 병원 밖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항상 도전하고 또 항상 웃는 딸이었다고 말했다.
일요일 새벽 3시경, 신애진씨의 어머니 김남희씨 는 딸의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가족들이 미친듯이 찾아 다녔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경찰이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딸의 시신을 확인했다고. “우리 딸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또 고마왔어요. 어린 동생을 너무 잘 보살펴 주었고요. 아빠 엄 마가 모두 일하러 나가는 우리 가족에게 그것이 얼 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몰라요.”, 어머니가 말했 다.
신애진씨는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과 경영학을 전공으로 공부했다. 부모님들은 해외로 자주 휴가를 다녀 온 것이 남은 소중한 기억이라고 했다. 최근에 코로나 팬데믹 직전에 다녀온 라오스를 포함해서. 아버지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그 아픔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고 했다.
앤 기에스크, 20세.
앤 기에스크가 그녀의 인스타 그램에 올린 마지막 사진들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서울의 한강 근처에서 찍은 석양을 배경으로 한 것이 었다. 앤은 켄터키 대학교의 간호학과 학생이었다. 이제 막 20살이 되었고, 지난 8월 부터 서울에 있으면서 인스타 그램에 여행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지난 일요일 켄터키 대학교가 그녀를 이태원에서 희생된 두 번째 미국인으로 확인한 이후 에, 그녀의 생일을 알리는 포 스팅 밑에는 홍수같은 메시지 들이 달렸다. 친구들에 따르면, 앤은 친절하고 자기를 내세 우지 않았고, 만나는 사람을 마치 가족처럼 대해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앤의 부모인 댄과 마돈나는, 딸이 “모 두에게 사랑을 받는 밝은 빛이었다”고 말했다.
켄터키 북부 출신인 앤은 읽기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가족과 지내는 시간을 좋아했으면 대학교 내의 카톨릭 커뮤니티에서 활동적인 멤버였다. 비치우드 고등학교에서 졸업반으로 있을 때, 앤은 밴드의 북을 담당하였다. 음악을 사랑했고, 5학년 때부터 비치우드 밴드의 일원이었었다, 앤은 너무 재능이 넘쳐서, 비치우드 밴드의 이사인 오스틴 브래들리는, 그녀가 음악 전공을 할 수도 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간호학교에 간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 결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 아이(앤)는 사람들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하는 것, 그저 도와주고 돌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마디나 셰르니야조바, 26세.
마디나 셰르니야조바는 여행 인플루언서였다. 북한과의 경계에 있는 전통적인 섬유 전시관과 숲속의 알 파카 농장을 포함한, 남한의 구석구석에서의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쓰기를 사랑했던…
인스타그램에서, 마디나는 전통 한국 악기를 시도하 는 수천 명의 팔로워와 함께 하면서, K팝 춤 교습에 참여하기도 하고, 미용 제품을 리뷰하고, 사계절을 음미하는 그녀 자신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출신인 마디나가 이태원 참사에서 죽었다고 대사관에서 확인했을 때, 그녀는 26살이었다.
마디나가 기고하는 온라인 잡지의 편집자인 키지 쿤 은, 마디나가 한국어를 포함한 4개 언어에 능통한 재 능있는 작가였고, 서울시를 위한 공식적인 여행 대사 (tourism ambassador)로 일했다고 말했다. “마디나는 그녀 자신의 여행을 그대로 따라 하는데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을 모두 알려줄 뿐 아니라, 마치 독자 가 바로 옆에 앉아서 듣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말로 표현하는 그림처럼 설명했다. 어떤 기회라도 다가오면 아무 주저없이 잡는 사람이었다.”
한국 정부가 스폰서를 선 여행 프로그램에서 마디나를 만난 이후, 가족같이 찰떡 연결이 되었다는 나빌라 아미 모드 유소프는 마디나가 타고나기를 품이 넓은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통역을 해 주고 사진을 찍어주 었다고 한다. “마디나는 누구를 위해서도 항상 바로 거기에 있으면서 최대한의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우리 모두 아직도 (그 녀가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마디나는 중앙대학교에서 국제비즈니스를 석사과정으로 전공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악토베 출신인 그녀는 카잔 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이번 여름에 26번째 생일을 맞았었다. 마디나는, 동물을 사랑해서, 길잃 은 길고양이를 먹이고, 애완동물원을 방문하고, 애완 새들과 춤을 추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마지막으 로 올린 사진은, 비극 6일 전에 올린 것이었고, 가을 잎들을 공중으로 던지고, 웃고, 테라스에서 음료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놀라운 것들이 그 앞에 놓여 있는 그야말로 놀라운 사람이었다. 작별을 고해야한다는 것 이 너무 슬프다”고 쿤은 말했다.
아파그 라스트마네쉬, 29세.
아파그 라스트마네쉬는 논문을 낸 연구자이고, 당당한 페미니스트이자 디저트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미식가이 다. 아파그는 그 경력을 더 발전시키고 정부의 억압으 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남한으로 왔었다고, 그 친구들은 전한다.
29살이 된 이란 출신의 아파그는 이태원 참사로 당한 부상으로 인해 사망했다. 그녀의 친구이자 포닥 연구자 인 모하마드 타바콜리 야라키는, 아파그가 연구 성과에 대한 압력과 고국인 이란에서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고자 이태원으로 나갔다고 전했다. “그저 주말 하루동안 스트레스를 풀려고 나갔는 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저 하룻 저녁의 행복을 누리 기 위해서 나갔을 뿐인데”라며 떨었다.
아파그는 애완동물과 사진찍기를 사랑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에는 올리지 않았다고, 고려 대학교에서 아파 그와 함께 포닥 연구를 하고 있는 수랴프라바 띠루말라 이사미는 말했다.
아파그는, 기계공학 박사과정에 있었 고, 생물센서를 연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수랴프라바가 아파그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 은 토요일 3시 쯤이었다. 여러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 문 화가 서로 어울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바로 그 곳에서 비극이 발생하기 바로 몇 시간 전이었다. 수랴프라바는 아파그로부터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놀랐다. 그것은 의료 진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아파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두 명의 다른 친구들이 병원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아파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어요. 그의 손을 한동안 잡고 놓지 못했어요.” 수랴프라바는 이메일 에서 아파그가 “매우 친절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고, 또한 대담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파그의 생일은 11월 15일이다. 수랴프라바는 인도 디저트로 아파그에게 깜짝 선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 다. 아파그가 죽고 나서, 수랴프라바는 아파그의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가 남겨 놓은 모든 사진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아파그가 웃는 얼굴을 나는 절대 잊지 않을거예요. 그 기억을 내 보물로 간직할꺼예요. 내 친 구의 영혼이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소를 찾기를 기원합니다.”
아파그는 이란의 야숫 대학교를 2016년에 졸업했다. 재료과학/공학 전공이었다. 2019년에 시라즈 공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태원 비극 바로 몇 주 전에 올린 박사 학위 인터뷰에서 그 자신을 “매우 목적이 분명한 재료 공학자”라고 표현했다. 모하마드는, 아파그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나라 즉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나라로 호주나 혹은 어떤 나라든 찾아서 자신의 학업을 계속 이어가려고 했다고 전했다.
근래의 몇 주 동안 에 아파그는, 이란 정부가 몇몇 지역에서 인터넷 연결을 끊어서 정치적 반대를 진압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란에 있는 가족과 연락하느라 분투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파그는 또 정착하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었 다.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모하마드는 2020년에 아파그가 한 전화통화를 회상했다. 아파그는 남한에서 온 박사 과정 제안을 받을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 공부를 할지에 대해서 조언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 때… 아파그에게 남한으로 가라고 한 내가 밉습니다. 아파그의 사진을 제 책상에 올려 놓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제 자신을 일깨우기 위해서.” “아파그는 성적차별에 반대해 투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성, 특별히 과학계에 있는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 지기를 원했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아파그는 아주 친절했고, 재능이 넘쳤습니다. 우리 그룹과 함께 하면 정말 좋았을 것입니다. 우리 그룹 내에서 스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란 정부는 4 명의 다른 이란 국적의 사망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알리 파라칸드 (36세). 레이하네 사닷 아타쉬 (24세). 소마예 모기미 네자드(32세). 알리레자 올리애 (36세)
스타인 롤크밤 에벤슨, 20세.
노르웨이에서 온 스타인 롤크 밤 에벤슨은 열렬한 여행가이 자 모험가였다. 가파르기로 악명이 높은 산에 올랐고, 절벽에 서 번지 점프를 뛰기도 했고, 진흙으로 가득찬 장애물 코스에 서 경주를 하기도 했다. 교환학생으로 연세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이태원 참사에서 사망했다. 20살이었다.
스타인은 다른 사람들처럼 남한 의 가장 큰 할로윈 축제에 참여 했었다. 1년 전에, 스타인은 공 작 깃털가 달린 해골 모자를 쓴 해적으로 분장하고 참여했었다. 스타인은 야외 활동에 열성이었다. 인스타그램에는 뉴질랜드 국립공원에서 카약을 타고, 피 의 말로로 라일라이 섬의 깨 끗한 물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있다.
남한에서는 벚꽃 사이를 걷고, 경복궁을 한복을 입고 가고, 친구들과 공원을 방문하는 것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올린 사진은, 지난 여름 한국의 해변에서 그네를 타면서 파란 바다와 먼 산을 바라보는 장면을 담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 멤버 한 명을 잃었습니다. 몇 주 전 산악자전거 모임 중에 스타인을 만난 것은 행복했습니다. 스타인의 친구들과 가족에게 우리 마음을 전합니다” 라고, 노르웨이 한국 학생회는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