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한숨 돌리고 앉았다. 이제는 정말 연짱 마감은 도저히 체력이 달려서 못하겠다. 2002년 4/4분기에 레귤러 두개에다 선거홍보까지 어떻게 했는데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음. 손가락도 하나 까딱하기 싫지만 내일부터는 대여점의 연휴 매출에 적극 협조할 예정이니 밀리기 전에 책을 하나 포스팅.
제목만 봐도 다 짐작이 되듯이 일본에서 뭔가 족적이랄까 나름대로 흔적을 남긴 한국인들에 대한 얘기이다.
일본을 믿고 함께 뭔가를 도모하려 했던 김옥균, 끝까지 저항한 최익현, 임진왜란 때 끌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에 순응해 살았던 이진영이라는 선비부터 얘기가 시작된다. 이것은 길게는 4백년 전, 짧게는 수십년 전 자의건 타의건 일본에 뿌리내려야했던 한국 핏줄이 택했던 세갈레 길을 상징한다.
그 다음부터 수록된 인물들은 도고 시게노리처럼 정말로 이 사람이 한국계? 라는 놀라움을 주는 인물부터 대충 이름은 듣고 알고 있었던 심수관이며 역도산 같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내가 이 책을 택한 목적은 이삼평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였는데 솔직히 각 인물들에 대한 추적과 소개는 깊은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좀 얕다. 신문이나 잡지의 특집기사 정도의 깊이. 그래서 쉽고 재밌긴 하지만 다음 단계의 조사를 위한 디딤돌 정도로 받아들임이 좋을 것 같다.
각자 기대하는 정보의 폭이나 깊이를 제외하고 사실의 단편은, 이런 류의 간단한 인물사치고는 꽤 많은 생각의 가지를 치게 한다. 인물 자체보다 그가 속한 사회 전체에 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해주는 내용이라고 봐야겠다.
일단... 끌려간지 4백년이나 되는데도 한국계라는 것을 밝히고 이름을 지켜내는 그 힘은 무엇인지? 메이지 유신 이후 그 가혹하다면 가혹할 일치주의의 파고를 넘고 이름을 바꾸지 않은 이삼평이며 심수관 가도 대단하지만 실상 그 이전 3백년을 지켜온 사람들도 보통은 아니다. 한두 세대도 아니고 3백년이면 이미 조선이란 땅과의 연결 고리나 핏줄은 흔적만 남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텐데. 메이지 때까지 조선 이름을 지켰던 이들의 상당수가 특권층에 속해 조선출신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을 일이 적었고 봉건사회 특유의 폐쇄적인 커뮤니티와 혼인 관계를 생각해도 대단한 기록이란 생각이 든다.
우산이 사라지고 조선인에 대한 전 국가적인 차별이 시작된 것은 메이지 시대부터인 것 같은데 최근 소위 한류 열풍에 묻혀 잊혀졌지만 1980년대까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뉴스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메뉴였다. 그걸 배경으로 한 이현세와 허영만의 만화나 영화, 드라마 같은 것도 꽤 있었다.
어느새 묻혀버린 과거지만 당하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삶이 투쟁 그 자체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차별을 못 이겨 일본식으로 이름으로 바꾸고 귀화하는 사람들은 경원시하고 고생을 자청하는 사람들을 영웅 취급하는 분위기도 우리 사회에 상당히 큰 흐름이었다.
나도 당연히 귀화=배신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어린이 중 하나였는데... 어른이 되고 오랜만에 잊고 있던 그 차별의 기록을 만나보니까 오히려 귀화한 쪽에 더 동감이 된다고 할까. 이름을 지켜낸 사람들은 정말로 독하디 독한, 보통이 아닌 인간이다 싶다.
그런데 버텨낸 한국인들도 대단하지만 일본인들도 좀 웃기달까... 어디 내놔도 만만찮은 우리보다 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건너온 바로 그 세대나 다음 세대를 차별하는 건 나름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몇백년이나 그 땅에서 결혼하고 밥 먹고 살았으면 이름이 뭐건 일본인인데 단지 조선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렇게 차별하게 집요하게 못살게 굴 수 있다니...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경탄이 터져나온다. 시마구니 곤조로도 모자라는 듯. 뭔가 다른 단어를 찾아내 붙여줘야 할 것 같다.
먼지 쌓여 잊고 있었던 차별에 관한 기록과 몰랐던 이름들을 많이 알게 된 것이 수확. 문청을 꿈꿨던 기자라 그런지 곳곳에서 감정 과잉의 문체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가치를 폄하할 정도는 아니다. 뭐 그 역시도 각자의 취향이니....
책/인문(국내)
슬픈 열도 -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김충식 | 효형출판 | 2007.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