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라 덜 춥든 제대로 춥든 겨울이 오면 두꺼운 기모 타이즈는 기본으로 갖춰입는다.
오래 신다(? 입다?) 보면 발굼치나 발가락 등 먼저 해지는 부분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는데 올해 유달리 구멍이 많이 난다. 바느질해서 구멍을 매꾸면 그 옆에 구멍이 나고 있는데 몇 번 더 땜빵해보다가 이제 버리던지 해야겠음.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줄줄이 구멍이 계속 나서 대부분 버리고 새로 장만했던 것 같은데 그때 살아남았던 애들의 수명이 다하는 모양이다.
타이즈에 난 구멍을 바느질로 떼우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빨강머리 앤. 앤이 바느질하던 구멍난 타이즈는 기모가 아니라 털실로 짠 거였을 텐데, 모직이면 꽤 따뜻했겠다 싶음.
그 다음 떠오른 건 내가 어릴 때 신던 타이즈. 아마 나일론이나 면과 나일론 혼방이었지 않을까 싶은데 그 타이즈도 도톰하니 꼭 뜨개질 한 것 같은 질감이었다. 잘 넘어지던 아이였으니 내 타이즈도 아마 모친이 수없이 무릎에 난 구멍을 바느질해서 막아주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이 글을 쓰게 한 본론은 타이즈 바느질이 아니라 -아마도 회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내 겨울 타이즈에 들어 있었던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가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놓고 갔다고 타이즈 보라고 해서 뒤적였더니 빨간 유리구슬이 박힌 반지와... 아마 다른 것들도 있었을 텐데 내 기억엔 작고 예뻤던 그 빨간 유리구슬이 박힌 반지만 남아 있다.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솔직히 산타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별 감흥이 없어 반응도 시큰둥했었던 것 같다. 내 반응이 기대 이하였는지 모친도 산타 할아버지를 이벤트를 더 하지 않으셨던듯. 공무원 아파트 살 때니까 4살에서 5살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양말에 들어 있었던 산타 할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 유치원에서 만난 산타 할아버지는 사진으로만 있고 내 기억에는 없었던 걸 보면 기억처럼 밋밋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쓰면서 떠오르네.
여하튼... 내 산타 할아버지는 양말이 아니라 타이즈에 내 선물을 넣어 놓고 가셨다는 걸 여기에 기록. 그 선물을 챙겨줬던 모친과 이모는 다 떠나셨구나. 세월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