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가치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내 개인적인 기록.
어제 한남동에 갔다가 부친이 무척 편찮으셨을 때 휠체어 타고 들어가게 해줬던 고마운 가게가 재개발 구역에 묶여 비워지고 철거딱지 담장이 둘러지는 걸 보면서, 전해질 리는 없겠지만, 고마움을 글로라도 남기자 생각했다.
한남동을 비롯해 옛날 건물들은 다 턱이 있어서 건강한 사람만 이용이 가능하다. 편리하게 설계된 현대 건물이더라도 불편한 사람은 환영하지 않고 눈치보게 하는 분위기가 많은데 여긴 옛날 건물인데도 경사로를 시늉이나마 설치해놨고 휠체어 손님도 환영해서 병원 오셨던 부친이 따뜻한 점심을 드실 수 있었다. 그 병원 갈 때마다 이용했었는데 문 닫은 거 보니까 왠지 아쉽고 쓸쓸.
친절했던 사장님. 어디서 뭘 하시든 번창하고 건강하시길.
한방통닭이며 모노마트 등 가끔이지만 이용하던 장소들도 문을 닫은 걸 보면서 또 다른 동네에 대한 기록도 내 기억이 다 날아가기 전에 남겨보려고 함. 서울에선 드물게 (상가 한정) 큰 변화가 없었던 동네에 계속 살다보니 수십 년 자리를 지킨 오래된 가게를 대를 이어 이용하다 그 사라짐을 보게 된다.
동경전자. 이제는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파상이다. 이름으로 추정하건데 일본 수입가전들 위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음. 미국에서 사온 프로젝터 tv며 LDP 등 종종 신세졌던 곳인데 본래도 다리가 불편하셨던 사장님이 어느날부터 전동 휠체어를 타시더니 은퇴하신 모양.
세정한의원. 컴퓨터도 없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80년대로 시간 여행하는 것 같은 장소였다. 침 맞으러 갔을 때 보약 먹으라고 스트래스 주지 않고 효과 좋고 가격 좋은 공진단을 처방해주는 (체질별로 줌) 한의원이었는데 은퇴하신 모양. 이제 어디 삐끗하면 어디로 침을 맞으러 가야하나... 지난 번에 허리 삐끗했을 때 정말 그리웠다.
동서슈퍼. 어릴 때는 어마어마하게 크게 느껴지던, 동네에서 제일 복작이던 수퍼마켓이었는데 어느날 1층을 내어주고 지하로 내려가더니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본래 하던 사장님은 일찌감치 은퇴하시고 자식들은 다 미국이민가고, 조카가 인수한 뒤 온가족이 매달려서 열심히 하더만... 지금은 명품 아울렛??? 한 번도 안 가봤음.
시장에서 좌판 놓고 콩나물이며 이것저것 파시던 할머니들 한분씩 접으시더니 한분 빼고는 다 돌아가셨다고 함. 콩나물 아줌마(내가 처음 뵈었을 땐 젊은 아줌마)가 직접 키워 판 콩나물만 수십년 드시던 우리 부친은 지금도 시판 모든 콩나물 사드리는 거 족족 너무 질기다고 불평하심. 야들야들 여리여리한 콩나물이 드시고 싶으면 직접 키워드시는 수밖에. 콩나물 아줌마의 콩나물로 한 콩나물 밥 진짜 맛있다. 때 되면 다듬어서 파는 쑥, 달래, 은달래, 냉이 등 나물과 계절별로 나오는 제철 콩 깐 것들도. 콩과 마늘은 건어물 가게의 아줌마(=할머니)들이 콩나물 아줌마 은퇴하신 뒤 팔고 있지만 그때 만큼 다양하고 세심하지 않아서 아쉽. 그렇지만 그나마도 이 할머니들이 장사 접으시면 끝이겠지.
정육점은 다행히 아들이(엄청 뺀질거렸는데 개관천선, 환골탈태) 이어 받아 잘 하고 있는데 건어물 가게는 아들이 간간이 일은 돕지만 이어받을 것 같지 않음.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