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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타

국립 중앙 박물관 조선 전기 회화전 (2025.8.13)

by choco 2025. 8. 14.

친구 찬스로 초대권 관람. 지난주까지 주변을 마비시키는 도떼기 시장이었는데 다행히 이번주는 좀 나아진 것 같다. 비가 많이 와서 차 갖고 갔는데 고맙게도 주차장에 자리가 있어서 좋은 자리에 주차시키고 3층 특별전시회장으로. 

어릴 때는 뭐든 많이 봐야 남는 느낌이라 작은 전시관은 손해보는 것 같았는데 (테마별로 나눠놓고 돈 받는 빈 박물관들을 욕했었음) 늙으니 보는 것도 소화가 느려져서 2시간 이내에 찬찬히 보고 나올 수 있는 전시를 선호하게 된다. 이 전시가 딱 그런 적정선. 

우리나라 기획이나 큐레이팅의 수준이 참 많이 올라와 세계 수준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게, 테마도 좋고 전시도 눈에 쏙쏙 잘 들어오게 모아놨다. 1부는 조선 전기 도자기, 2부는 그림과 글씨, 3부는 불교로 나눠져있는데 백, 묵, 황이라고 했었던 것 같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2부였지만 1부도 내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도자기의 재발견?

화려하게 섬세한 고려 청자와 다른, 조선 전기의 연질 백자가 이렇게 현대적이면서 예뻤던가??? 하게 됨. 국중박 관계자들이나 문화재 애호가들이 분노할 수 있겠지만 보는 내내 저기에 비빔국수 담으면 예쁘겠다, 저긴 냉채 담으면 예쁘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구경했다.  ㅎㅎ 서양의 빌라트 같은 것보다 이걸 현대화한 식기 더 고급지고 멋지겠다 싶음. 

사진보단 내 눈과 기억에 담는 걸 더 선호하지만 그 귀찮음을 무릅쓰고 핸다폰을 열게 한 도자기 몇 점.

어떻게 이런 색감을 낼 수 있었을까?  저기에 차 한 잔 하고 싶네.  아니면 요거트에 과일 올려서 세팅해도 멋지겠다. 

사진엔 담기지 않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가진 왕실 제례용 주전자. 기운 센 남자가 들어야 사용이 가능하지 싶은 크기. 

개구리인지 도롱룡인지 장어인지 모르겠는 익살맞은 주둥이를 가진 주전자.  백화점 매장처럼 도자기를 좍~ 모아놓은 자리에 있었는데 눈에 확 들어온다. 

2부 회화와 글은 메트로폴리탄, 일본 등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빌려온 조선 전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선비를 상징한다는 나귀.  그냥 안빈낙도하면서 공부만 하다 갈까, 벼슬에 나갈까 고민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장면이라고 함. 그림은 엄청 큰데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찍어봤다. 

자주 보던 그림인데 이 멍멍이가 왕실에서 키우던 아이라는 건 이날 처음 알았음. 목걸이며 방울이 범상치 않더니 역시 부자 주인님네 멍멍이였구나. 예전에 다른 친구랑 상설 전시실에서 이 그림 보며 내 새끼를 예쁘게 꾸미고 싶은 주인의 욕구는 세월을 초월한다는 대화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옆에 걸려있던 다른 강아지들 그림. 평화롭구나... 

한석봉이 쓴 천자문. 

한자를 읽으면서 해석하게 되는 월인석보(던가?)

전형필 선생님이 부산 피난갈 때 유일하게 챙겨갔다는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 

이 책들을 보면서 생각한 게, 500년 전 한국어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복모음이 굉장히 많았겠다.  독일어 배울 때 괴로워하던 움라우트에 해당하는 그런 발음들을 우리 조상님들은 아주 당연하게 사용했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전혀 구분하지 못 할 모음 ㅏ와 · 도 자연스럽게 구별해 썼겠지.  현재 ㅈ으로 쓰는 단어를 ㄷ으로 쓰는 게 많이 보이는 걸 볼 때 중세 한국어의 흔적은 서울, 경기도보다는 평안도, 함경도 쪽에 더 진하게 남아있지 않을까 혼자 짐작 중. 

이런 세월의 흐름을 찾아보며 혼자 상상하는 게 박물관에 가는 즐거움이지 싶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조선 전기를 모아서 볼 수 있어서 흡족.  불교 관련 전시물을 기대 많이 했는데 오히려 그쪽은 도자기나 회화, 서예에 비해 개인적으로는 좀 밋밋했다. 

간만에 문화 생활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