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격이 3300원일 때 (그나마도 인터넷 세일가로 사서 더 쌌다)는 딱 그 정도만 기대한다.
그냥 가볍게 훑고 한두개만 건지면 되는 스넥이나 패스트푸드 정도로. 그런데 아주 가끔은 자기에게 매겨진 가격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게 바로 그것.
대부분이 일본 개항기 시대를 다른 책들이 그렇듯이 페리 제독에 의한 강제 개항과 메이지 유신 시대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얘기들이 흘러나오리라. 그렇게 기대를 했는데 이 책의 첫 얘기는 오다 노부나와 별사탕의 얘기이다.
전국시대를 할거한 일본인 중 내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는 사람이 바로 오다 노부나가. 탁월한 국제 감각을 지닌 그가 만약 아케치 미쓰히데의 습격 때 혼노사에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일본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천황을 꿈꿨다는 그가 만약 천황이 됐다면 만세일가라는 우리의 단일민족신화 만큼이나 말 안되는 천황가의 신화를 일본인들은 지금 어떻게 서술할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도 포르투갈과 외교 단절이 없으리란 법은 없겠지만 별사탕을 시작으로 일본에 들어오게 된 서양 문물들의 이야기는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카스텔라, 카르메이라로 불리는 뽑기. -엄청 먹었다- ^^;;; 단팥빵과 크림빵, 그리고 당연히 일본의 오랜 전통 음식으로 알았던 샤부샤부, 스끼야끼의 역사가 불과 100여년 안밖이라는 사실에 감탄하고 또 놀라기도 하고.
쇠고기를 먹는 것이 일본인들에게 미개함을 타파하고 개화를 받아들이는 상징이었단 사실도 재밌다.
천무 천황 이후 1200년간 일본이 공식적으로는 뒷구멍으로 하지 말라는 짓 인간들은 어디나 있으니 예외로 치고 육식이 금지된 나라였다는 것도 솔직히 내겐 금시초문이라 놀라웠다.
결국 지금 일본인들이 미친듯이 먹어대는 그 엄청난 양의 돼지고기와 쇠고기도 따져보면 서양문물 수용의 결과라는 얘기. 재미있다. ^^
책과 상관없는 단상 하나. 포르투갈에 가면 일본과 비슷한 음식이나 단어들이 꽤나 많다던데 그건 상호 작용일까? 한국에 아리아스의 책이 번역이 됐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책/인문(국외)
일본의 서양문화 수용사
정하미 | 살림 | 2005년 8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