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9?-11.9
9월인가부터 잡고 있던 책을 이제야 끝을 냈다. 내용도 재미있고 번역도 잘 되어서 읽기 좋은 책인데 문제는 신국판 정도 사이즈에다가 하드커버 양장본이라 만만찮은 두께와 무게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책은 주로 갖고 다니면서 읽는 내 독서 습관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다. 끝내고 나니 속이 후련. 자투리로 남은 책 끝내기 주간으로 책정한 이번 주에 읽어나간 책 중에서 가장 실한 성과 중 하나이지 싶음.
내용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대표작들과 일본 고전 '겐지 이야기'를 영어로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라는 미국 학자의 자서전이다.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왜 일본 문학을 하게 되었는지. 일본에서의 생활과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과 문인들,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의 생활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시간 순으로 더불어 사건 순으로 세분화되어서 찾아읽기도 쉽다.
자서전이니 당연하겠지만 이 책에는 작가의 일본관, 동양관이 거의 거세되지 않고 드러나있다. 작가 나름으로는 많이 정제하고 또 편집자를 통해서 정리가 됐겠지만 미국 우월주의와 정복자이자 1등시민 미국인으로서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즐겼던 지위와 생활에 대한 아련한 향수랄까 그리움이 많이 묻어나서 가끔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할 것 같다.
책 말미에 번역자는 사이덴스티커의 백인 우월주의와 자국의 법은 무서워하면서 동양에서는 상당한 탈법을 저지르고 (반출 금지된 한국 도자기를 외교 루트를 통해 몰래 빼내가는) 그걸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거부감을 표시한다.
이 내용은 읽는 사람이 어느 국적을 갖고 있냐에 따라서 사이덴스티커에 대한 생각이나 평가가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양국민 모두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닌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또 애증이 섞인 사이인 한국인의 시각에서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뻔한 단어로 다음 문장을 시작해야할 것 같다.
이 사람이 좀 고급으로 놀았다 뿐이지 우리가 흰눈으로 보는 한국서 천국을 만끽하는 독신 외국인 남성들의 그런 삶을 일본에서 즐겼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분명히 했다.
사이덴스티커가 아니더라도 가와바타 야스나리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이나 겐지 이야기를 번역해줄 사람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일본 문화를 이해하고 저자와 교류하면서 꼼꼼하게 수준 있는 번역을 해내는 게 그 세대에 가능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리고 어느 정도 상업성을 가진 기획과 연출이 가능한 번역자를 찾는다면 더 범위가 좁아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나치게 노벨상에 목을 매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감흥없이 바라보는 입장인데 소개해볼만한 작품이 양질의 번역과 제대로 된 기획으로 해외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 사람의 자서전을 보면서 갖게 된다.
본래 책 뒤나 혹은 앞에 번역자며 이런저런 사람들이 달라붙어 이런저런 소리를 길게 늘어놓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의 말미에 편집자가 쓴 장문의 후기는 사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내용이었다.
번역자는 몰라도 편집자가 책에 직접 글을 남기는 건 드문 일인데... 책의 주제 때문인지 여러가지로 재밌는 기획들을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