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용실에 앉아서 잽싸게 읽은 책이다.
90년대부터 언론에서 간간히 언급된 법무법인 (이 아니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으로 후진적인 한국에서 법률시장 개방이 됐을 때 그나마 토종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지켜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진적인 법률 사무소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물론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국가적인 뻘짓과 재벌 비리에 빠짐없이 등장한 덕분에 그 이미지는 희석이 됐지만 이 정도까지인줄은 정말로 몰랐었다. 직업상이긴 하지만 그나마 사회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갖고 뉴스의 행간과이면을 열심히 보는 편에 속하는 내가 이 정도면 무관심하거나 90년대의 세뇌에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일지 솔직히 두렵다.
이 책은 임종인이라는 국회의원과 외환카드 노조위원장을 하다 해고된 장화식이라는 두 저자가 함께 나서서 김앤장의 실체를 장님 코끼리 더듬기로나마 밝히려고 노력한 리포트이다. 책이 발간된 시기와 이름을 올린 두 저자의 면면을 볼 때 상당히 의도가 보이는 기획이긴 하지만 누구한테 해끼치는 것도 아니니 그걸로 트집 잡을 의사는 전혀 없다.
오히려 의도가 있더라도 이런 기획을 해서 이 정도나마 파헤쳐준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계란으로 바위를 계속 칠 의사가 있다면 꼭 뜻을 이루면 좋겠다는 응원의 심정까지 생기고 있다.
철저하게 감춰진 그 지독한 철의 삼각지대를 이루는 커넥션에 대해 이들은 최소한의 윤곽선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아마 법률적인 검토를 면밀하게 거쳐서 초고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은 다 제거를 한 결과가 이 책일 것이다. 그럼에도 평균적인 한국인이라면 분개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로 가득하다고 하면 대충 책 소개는 끝난 듯.
근데 책을 읽으면서 내게 던지는 의문 하나. 이렇게 분노를 하면서도 내가 만약 이 커넥션에 속할 정도로 능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었다면 억대 월급이나 대접을 거부하고 독야청청할 수 있었겠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NO를 외치지는 못하겠다. 억대 월급과 대접은 거부했을 지 몰라도 선배 혹은 상사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못했을 테고 그러다보니 결국 한발한발 같은 수렁에 빠져들었겠지. 탐관오리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이 커넥션에 속한 상당수는 그렇게 시작을 하면서 인간의 뇌가 가진 탁월한 자기 최면 능력으로 자기 방어기제를 완벽하게 갖추면서 행복해졌겠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준비하지 않는 한 김앤장과 연관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리가 없겠지만 읽으면서 '니들은 안 그럴 것 같냐. 모자란 것들이 부러워서 지X들이지' 라고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자정은 불가능이고 문제는 국가 시스템의 개편인데 이번 정권에서 과연? 차라리 고양이 머리에 뿔나길 기다리는 게 빠르겠지.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하기는 해야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의 고스트라이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려운 얘기를 정말 쉽고 박진감 넘치게 잘 구성해서 풀어썼다. 비슷한 일을 하는 동종업자로서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음.
책/인문(국내)
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임종인, 장화식 | 후마니타스 | 2008.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