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에 마구 후달리면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지는 병이 도졌다. 열심히 자료를 보면서 구성안을 짜내야 하는 시간이건만 그냥 딴짓이 하고 싶어서 새로 도착한 책 중 제일 만만해 보이는 이 책을 골랐다.
1950년대 후반 노르베르트 레버르트라는 저널리스트가 나치 지도층의 자녀들을 취재해 남긴 기록과 40년 뒤 아들 슈테판이 다시 그 자녀들을 취재한 기록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있다. 40년의 시차를 두고 나치 최고위층 자녀들의 삶과 아버지에 대한 시각을 취재해 정리한 것으로 그들의 삶도 삶이지만 그동안 알고 있었던, 모범적인 전범 처리의 상징 독일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내게는 더 강렬했다.
'과거 타령은 이제 그만 해라. 그동안 충분히 하지 않았느냐. 너무 오랫동안 과거에 매달렸다. 언젠가는 종지부를 찍고 그만둬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논리. 한국인이라면 너무나 많이 봐온 친숙한 논거이다. 이것이 나치 연구를 하는 독일인들에게 가해지는 무언의 압박이라고 한다.
가해자는 존경받고 희생자는 살아남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구조 역시 우리가 몰랐을 뿐 독일에서 당연한 과거였당는 것도. 나치 최고위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연합군의 원활한 독일 통치를 위해 다 거의 다 이전 직위로 복권되어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았고 그 후손들 역시 같은 것을 누리고 있다면... 자신들의 과거를 헤집는 역사학자들의 추적이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정체가 탄로 나서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간의 자기 방어 기제를 통해 철저하게 묵인하고 안락함을 누렸던 가해자에 반해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끝내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참으로 씁쓸하다. 그게 저 머나먼 독일 땅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얘기이기에 더 뒷맛이 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소름 끼쳤던 문구는 '참으로 우습고 모순되는 이야기지만 다른 사람을 기롭히는 것은 괴롭힘을 당하는 쪽보다 부작용이 훨씬 적다.' .... 진짜 어쩌라고라는 비명이 절로. 다시 한번 신에게 왜 돌고래들에게 이 지구를 맡기지 않았냐고 묻고 싶어진다.
부러운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터부시되던 나치 제국에 대한 연구가 독일 안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각과 동시에 기득권을 잃을 이해 당사자들의 상당수가 세상을 떠나고 바로 내 아버지 혹은 내 가족의 문제가 아닌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가능해진 작업일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이렇게 뒤늦게라도 올바른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 나라는 어찌 돌아가고 있는 꼬락서니인지. 이제 겨우 제대로 세우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해야 할 역사마저도 2MB의 용량에 모두 맞춰서 살으라는 건가?
책/인문(국외)
나치의 자식들
노르베르트 레버르트, 슈테판 레버르트 | 사람과사람 | 200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