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Dead Reckoning 로 2001년에 나온 책이나 과학 분야라는 특성을 볼 때 좀 낡은 감이 없잖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야 첨단이나 과학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크게 거슬리는 것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야할듯.
그건 일단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겠다. 법의학의 권위자인 저자가 직접 겪었던 현장의 일, 부검 등이 이뤄지는 모습이 마치 화면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저자 혼자만의 얘기가 아니라 저명한 법의학자들 -나마저도 아는 헨리 리 등-이나 일반인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곤충 법의학이나 혈액학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정보도 아주 흡입력있는 문체와 내용으로 알려주고 있다.
어릴 때 남의 나라에서 엄청 시끄러웠던 사건, 내게는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그 O.J 심슨 사건은 미국 법의학계에 있어서는 현장 보존의 필요성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법의학 관련 책을 몇권 읽지도 않았는데 빠지지 않고 이 내용이 나오고 있다. 독자 입장에서 다각적인 접근을 하는 의미로 또 흥미롭다.
각종 범죄 케이스와 법의학을 통해 범인에게 접근해가는 방식은 대다수 이런 류의 책과 별로 다를 바가 없지만 마이클 베이든의 책에서 특이한 점은 법의학자의 윤리에 대해 엄중하게 짚고 넘어가는 점이다.
CSI 의 붐으로 법의학이 뭔가 전지전능하다는 환상을 많은 사람들이 갖게 하고 있는데 그게 악용될 경우에 얼마나 억울한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는지. 과학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누명을 뒤집어 쓸 수 있다는 걸 실제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소위 쓰레기 과학과 중립성을 잃은 법의학자들의 위험성은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운 현실이다.
이 장 말고도 초반부터 베이든은 법의학자는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수사관들의 견해에 휘둘리지 않고 누구의 편도 아니어야 한다는 걸 주장하고 있는데 이건 아마도 그 자신의 법의학관이지 싶다.
그나저나... 이 책을 보니 미국도 확실히 유전무죄고 무전유죄이다. 우리만의 현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지식적인 측면에서 두고두고 기억될 것 하나. 일단 땅에 묻혀서 썩어버리면 증거고 뭐고 끝이라도 알고 있었는데 묻힌지 수십년 혹은 백년이 넘은 시체를 상대로도 검시가 가능하다니... 완전범죄를 꿈꾸는 살인자들은 피살자의 시체가 화장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로군.
그런데 사람을 죽이고 안심이라는 단어가 평생 가능할까? 하긴... 그건 나같이 소심한 기타 여러분의 얘기고 굳이 사이코 패스를 찾을 것도 없이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과 그 일당들을 보면 가능할 것 같기는 하다. 아직도 민정계라는 것이 존재하다니... ㅠ.ㅠ
책/과학
죽은자들은 토크쇼 게스트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 마이클 베이든의 법의학 이야기
마이클 베이든 | 바다출판사 | 2008.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