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植民地 朝鮮の 日本人. 2002년에 일본에서 나온 책이라고 한다.
종이는 질이 좋아 빳빳하니 두껍고 책은 참고 자료 등등을 다 빼면 역자 후기까지 합쳐도 200쪽인 얇은 책임에도 참 읽히지 않았다.
내용이 재미 없었다거나 번역이 엉망이었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이 멀쩡한 제 정신으로 3자 입장에서 읽어나가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내용이다. 인문 서적 읽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감정적인 자극에서 멀다는 건데 이 책은 읽는 내내 괴로웠다.
그렇다고 작가가 의도하고 자극을 주려고 한 것도 아니다. 보통 이런 류의 서적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작가의 사관과 사상이 강하게 표출되기 쉬운데 다카사키 소지는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고 담담하게 사실만을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더 찝찝하고 열 받고 등등의 온갖 감정이 내게 용솟음쳤는지 모르겠다. 강화도 조약으로 인한 부산 개항부터 시작해 시대별로 나눠서 어디에 몇명이 넘어왔고, 어떤 활동을 했고 등등. 정확한 숫자와 증거만이 있는 사실들만을 논한다. 차라리 그가 양심이 있는 척, 조선의 상황을 동정하는 티를 팍팍 내며 자기 변명이나 혹은 자기 비판을 했다면 여기 또 놀고 있군이라는 나의 전형적인 반응이 나왔을 텐데 그것이 싹 배제되니 오히려 이입이 된다고나 할까.
사실 이런 연구는 한국인에 의해 나왔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시작은 일본인이 한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피해자 입장에서 서술이 됐다면 어찌 되건 분노의 감정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이런 객관적이고 역사관이 최대한 탈색된 결과가 나오기 힘들었을 테니까.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든 생각 하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열받은 이유는 그게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 바로 내 눈앞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본국에선 찍도 못 쓰고 사는 것들이 한국에만 들어오면 행세하는 백인 쓰레기 (물론 다 그런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 많다.)나 그때 조선에서 거들먹거리던 일본의 실패자들이나 뭐가 다른지?
초반부에 강화도 조약 부분을 읽을 때 지금 한참 열나게 다 퍼주고 있는 한미 FTA에 이입이 되서 혈압이 또 올라 한참 책을 덮기도 했었다. 한번 잘못 맺은 조약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적나라하게 구경하는 느낌. 지금 현실에 이입이 되니까 한편의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다.
100여년 전 우리 조상들은 최대한 양보해 말하자면 무식해서 그런 불공정한 강도질을 눈 뜨고 당했다고 변명이라도 해주지만 지금 저렇게 삽질하는 시카고 보이즈들은 후손들에게 뭐라고 변명을 할 생각인지 궁금하다. 강화도 조약에 참가했던 그때 그 사람들처럼 국제법과 세계 정세를 몰랐다고 하려나???
책/인문(국내)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 - 군인에서 상인 그리고 게이샤까지
다카사키 소지 | 역사비평사 | 2006.6.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