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재미가 있는데도 내내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도 꽤나 오래 끌었다. 요즘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이클이라 그런 모양.
제목과 부제를 봤을 때 일제 강점기 1930년대 한국의 백화점에 대한 내용이려니 하고 책을 잡았는데 봉 마르셰 (혹은 봉 마셰. ^^) 백화점으로 시작되는 내용에 잠시 당황했었다. 하지만 보통 한국이나 기껏해야 일본을 포함해서 소개하기 쉬운 백화점의 역사를 그 원조인 프랑스에서부터 만나보는 건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었다.
환상적인 식품관 -사실 내 주머니로 나름 푸짐한 쇼핑이 가능한 곳은 식품관 밖에 없기 때문에 더 좋아하긴 하지만- 덕분에 내 완소 백화전 중 하나인 봉 마르셰의 시작부터 유행과 생활 패턴을 만들어 간 백화점들의 역사.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그 발전사와 생활의 변화는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도 흥미진진하다.
일견 건조할 수 있는 내용들인데 저자의 적절한 소재 선택과 흥미진진한 문체 덕분에 더 즐겁게 읽었다는 것도 인정해야겠다. 특히 헤로즈의 세일 시작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일본 애니매이션에서 흔히 등장하는 그 세일 첫날의 아수라장이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었구나라는 정보 획득. 더불어 나도 현장에 있고 싶다는 충동이 마구마구 일었다. 만약 그 시즌에 영국 런던에 있다면 나 역시 사전에 동선 파악을 해서 웨지우드나 로얄 코펜하겐 매장으로 전력질주를 하는 여자들 중 하나에 아마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에 나온 워너메이커 덕분에 근대적인 백화점=미국으로 박혀 있었던 내 잘못된 인식을 정정하게 되는 기회도 되었다.
먼 유럽과 미국을 돌아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백화점에 대한 소개도 잊지 않고 있다. 화신 백화점과 동아 백화점의 경쟁 얘기도 어렴풋이 알던 정보가 정리되어 좋았다.
책 자체는 적은 분량인데 많은 내용을 지루하지 않고 알차게 잘 담은 책인 것 같다. 최근에 이 출판사가 별 대단치도 않은 외국 책에 몇억이나 되는 엄청난 선인세를 주는 바가지를 써서 한국 출판계를 국제 호구로 만든 것 때문에 호감도가 엄청 떨어져 있었는데 이 문고로 조금은 회복.
이 책과는 전혀 관계없는 소리지만... 그 인세를 과연 책 팔아서 건질 수 있으려나? 그 돈으로 국내 저자들 인세나 좀 올리고 괜찮은 책이 묻히지 않도록 마케팅이나 좀 할 것이지. 본래 살까말까 하던 책이기도 했지만 국제 호구를 만들어 놓고 온 게 얄미워서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난 절대 안 사기로 했다.
책/인문(국외)
백화점의 문화사- 근대의 탄생과 욕망의 시공간
김인호 | 살림 | 2008.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