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좀 넘게 걸려서 악의 역사 2권 사탄을 끝냈다.
철학이나 신학적인 뜬구름 잡는 얘기는 절대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오리게네스나 아우구스티누스 등 아는 이름들이 간간히 나와주고 있어서 그나마 흥미의 줄을 놓치지 않고 버텨냈다.
1권에서 원시 기독교와 고대 사회에서 악과 악마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2권에서는 그게 좀 더 심화되어 초기 기독교에서 절대자이자 절대 선인 신과 반대 개념인 악마가 어떻게 공존을 하는지, 신의 섭리에서 악마라는 존재를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교리 안에 채워넣으려는 노력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와 경쟁관계였던 마니교 등 비슷한 철학관과 신학관을 가졌던 종교와의 세포 교환이랄지, 교리가 서로 유입되고 영향을 주는 모습들이 묘사된다.
그러나.... 역시 잘 모르겠다. 평생을 신학에 바친 신학자들이나 사막에 들어가 정결한 삶으로 신과의 소통을 꿈꾸면서 끊임없이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던 수도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끝내 해결하지 못했던 걸 내가 이해할 수는 없는 거겠지. 기독교의 교부로 인정받고 신학 체계의 상당부분을 세운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해결하지 못했으니 '괜히 힘 빼지 말자' 라고 편안히 결론을 내리고 그냥 지식으로서 겉을 훑는 독서를 마쳤다.
나처럼 무지몽매한 중생을 위해 저자인 러셀이 제일 마지막 챕터를 오늘의 사탄이라는 제목으로 할애해서 교부들의 노력을 정리하고 또 저자 나름대로 '신'과 '악'을 이해하는 두 단계를 요약해준다. 다른 부분은 그다지 납득하지 못하겠지만 신의 '선'이 갖는 관계성은 인간의 인식으로 영원히 파악할 수 없는 미스터리의 위치에 있다는 것만큼은 100% 동의하겠다.
1권에서는 전혀 인식을 못했는데 2권 말미의 결론을 보건대 러셀은 신학자인 동시에 기독교 신자인 모양이다. 아니면 번역자가 독실한 신자라 일부러 단어 선택을 그렇게 했을 수도 있겠지만.
기대만큼 재미는 없지만 어쨌든 시작은 했으니 이제 3권에 돌입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