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古今橫斷 漢字旅行 이라고 판매 사이트에 나와있던데 저자가 중국어로 먼저 쓴 책을 번역했다는 얘긴가 조금 헷갈리고 있다.
중학교 때 일주일에 딱 하루 있는 한문시간마다 쪽지 시험을 보고 틀린 갯수대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는 악몽의 3년을 보낸 관계로 한문과는 진짜 친하지가 않다. 오죽하면 나를 예고에 시험치게 한 가장 큰 당근이 예고에서는 한문을 배우지 않는다였을까. ㅎㅎ
이 저자는 대학교수라는 상아탑에 있는 사람 치고는 상당히 말랑말랑하게 씹어 먹기 좋은 글을 쓰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훈장선생님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꽤 성공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자에 대한 오랜 원한(? -_-;)마저도 잠시 잊게 해준다고 해야할까. 초를 다투며 외워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한자에 얽힌 다양한 얘기들을 읽는 것은 의외로 꽤 즐거웠다.
그 즐거움의 원인을 찾는다면, 역시 글자가 중심이 아니라 그 글자 주변의 풍부한 이야기거리가 아닐까 싶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어 흩어져 있던 지식들, 전설이나 동화의 범주에 있었던 내용의 상당 부분이 학문적인 근거를 갖고 기록으로, 또 설득력있는 가설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특히 최근까지 내 역사읽기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상나라(=하나라?)에서 갑골문자의 형성과 그 글자의 변천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훑어내려주는 건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던 부분이라서 특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많은 한문이나 한자, 혹은 중국 관련 서적들과 달리 과거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까지 그 내용을 끌고 왔다는 것에 둬야하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수백년간 그 교육을 받은 인재들의 서술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과거에 대한 연구는 중국 본토 학자들 못지 않은 수준의 내용들이 많은데 비해 현대 중국의 한자에 대한 고찰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신선했다고 하겠음.
많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나온 글 특유의 농익은 풍부함이 좋았고, 더 쑤셔넣고 싶은 아까운 자료들이 많았을 텐데 그걸 포기하고 쉽게쉽게 가준 것은 '대한민국'도 한자로 제대로 쓸 자신이 없는 무식한 독자 입장에서 저자에게 고마웠다.
좀 부끄럽지만 제일 고마웠던 것은 이전 책과 달리 소개된 한시 모두 뜻풀이뿐 아니라 한자음도 다 달아줬다는 것이다. 군데군데 구멍나는 한자음을 일일이 옥편으로 찾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감사.
그런데... 이전 당시에 관한 책에서 그랬는데, 왜 얼토당토않은 영어 외래어가 등장을 하냐고! 가장 괴로웠던 부분의 예를 들자면 스넥코너 말고 음식 노점상이라는 훌륭한 용어가 있다는..... 사소한 옥의 티겠지만 몰입을 확 깨버렸다. ;ㅁ;
약간 새는 얘기인데 중국에 관한 비교문화 저술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가 장징이다. 중국 출신으로 자국 문화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기반으로 그가 거주하고 있는 일본과 비교해서 아주 재미있는 글을 많이 쓰는 작가인데, 이 저자도 약간만 관심의 포커스를 더 넓혀서 중국과 한국의 한시나 한자를 아우르는 글을 써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이 정도 내공이면 콧바람 핑핑 나오게 하는 억지나 구멍이 뻥뻥 난 말도 안 되는 갖다붙이기가 아닌 제대로 된 논거나 비교를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힘들까? ^^
[#M_뻘...|less..|뻘이긴 한데... 중국을 배경으로 글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료 차원에서 읽어봐도 좋을 듯. 살짝살짝 써먹을 것이 쏠쏠하다. 당근 나도 곳곳에 클리핑을 해놨음. 먼저 쓰는게 임자니 빨리 써먹어야지~ㅇ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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