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빈에 가서 클림트를 싹싹 훑고 온데다 이번 전시회는 성인은 16000원이라는, 우리나라 전시 사상 최고가의 관람료를 책정해서 사실 공짜표가 생기지 않았다면 가지 않았을 거였다. 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걸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갔는데 괜찮았다. 아마 내가 해외에서 클림트의 대표작들을 보고 오지 않았다면 이 정도 가격이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음.
보통 한국에서 열리는 이런 전시회 때 유명한 작품 하나나 두개 정도 갖다 놓고 선전을 빵빵 때리는데 가보면 초기작이나 스케치, 습작 정도만 있어서 욕 나오게 하는데 이번 전시회에는 유디트와 아담과 이브, 포피 가든, 아기 등 벨베데레에 있는 대표작들이 꽤 많이 왔다. (지금 빈 벨베데레에 간 사람은 욕 나올듯. ^^;)
무조건 많이 모아오는데 주력하지 않고 큐레이터가 나름대로 원칙을 갖고 테마 별로 작품들을 모아서 오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덕분에 클림트의 다양한 에로틱 스케치들 -입구에 어린이는 부모님의 보호가 필요한 곳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벨베데레와 뉴욕 등에서 모아온 풍경화들, 클림트의 여인들을 비롯한 인물화, 그리고 벽화 작가로도 유명했던 클림트의 분리파 시절의 절정을 보여주는 베토벤 프리즈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볼거리들이 이어진다.
베토벤 프리즈 벽화가 전시된 전시실 전에 베토벤 프리즈를 위한 스케치 드로잉들을 전시해 놓은 건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그 드로잉이 어떻게 형상화가 되어 완성되었는지 보는 즐거움이 솔솔.
클림트가 디자인하고 그림 포스터들을 보면서는... 이 사람은 정말 천성적으로 빈 워크샵의 일원이자 리더가 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은 생활 속에서 밀접하고 활용하고 이용되어야 한다는 그 정신은 참으로 동감하지만 내 생활 속에서 이용하고 싶은 그림은 사실 그다지 많지가 않다. 하지만 클림트의 포스터니 벽화나 그림들을 보면서는 포인트 벽지로 한면에 쓰고 싶다는 욕망이 폴폴. ^^;
장소를 채우기 위한 전시물들도 분명히 있다. 클림트가 소장했던 중국 예술품 전시실, 응용미술학교 시절 클림트의 그야말로 초기작들은 '역시 천재도 오랜 습작과 노력이 필요하군'이라는 확신을 주는 그야말로 클림트의 초기작이라는 것으로만 의미가 있는 작품들도 있었고, 클림트와 그 가족, 그의 여인들과 연관된 사진과 그림들을 슬라이드 사진 식으로 모아놓은 전시실도 있었다. 내 돈을 내고 갔으면 클림트 일대기를 소개한답시고 사진과 그림들을 영상화 시켜놓은 분명 본전이 생각나는 기획이었지만 초대권이라는 게 사람을 한없이 너그럽게 하는지 그것도 나쁘지 않았음.
클림트의 인물화며 여인들을 마지막으로 나오면 스폰서인 스왈로프스키 컬렉션이 좀 뜬금없이 있고 또 클림트에게 영감을 받은 한국 작가들의 생활용품이며 스크린, 포스터 등이 있는데 별로 구매 욕구가 이는 작품들은 없었다.
오늘 이 전시회에 간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2년 전 레오폴드 뮤지엄에서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은 놓고 온 클림트의 다나에가 프린트 된 티세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가격은 알고 있으니 요즘 환율에 맞춰 한 20% 정도만 붙인다면 눈 딱 감고 하나 질러주리라! 나름대로 큰 마음 먹고 갔는데 없었음. -_-;
한국 도자기에서 유디트를 가지고 300세트 한정으로 티세트와 머그잔을 제작한 모양인데 구매욕구 전혀 일지 않음. 생활 도자기라고 함은 일상 생활에서 사용이 되어야 하는 거고 티세트의 경우는 커피냐 차냐 그 용처가 분명히 구분이 된다. 그런데 한국 도자기에서 만든 건 포트는 홍차를 위한 거면서 찻잔은 완벽하게 커피를 위한 거였다. 아직 한국의 홍차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건 인정하지만 수출도 하는 기업인 만큼 홍차 문화가 발달한 유럽이나 일본 시장을 뚫고 들어가려면 그런 근본적인 차이점을 디자이너들이 인식을 해주며 좋겠다. 머그잔은 예쁘긴 했지만 잔 두개에 10만원을 주고 사기에는 좀. ^^; 차라리 접시만 따로 팔았으면 그걸 사왔을 텐데.
그냥 나오려다가 우산에 딱 꽂혀서 -정말 클림트는 팬시화하기 좋은 그림을 그린다- 나는 베토벤 프리즈 프린트 접는 우산을 하고, 동생은 클림트의 여인들 초상화 우산을 사줬음. 출혈이 좀 크긴 헀지만 이 우산을 펼칠 때마다 행복할 것 같다. 동생이 땡땡과 스노이 프린트 우산을 사와서 비 오기만 기도를 하더니 지금 내가 그러고 있음. ^^
내부 촬영은 안 되서 전시회작 밖 사진만 몇장 찍었음. 초상화에 얼굴만 뚫어놔서 자기 얼굴 넣고 사진 찍게 하는 등 포토 존이 밖에 몇군데 마련이 되어 있는데 귀찮아서 그냥 보이는 것 몇개만 찍어 왔다.
요 며칠 전화가 죽은듯이 조용하더니 전시회장 들어가자마자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문자에 전화가 빗발을 쳤음. -_-;;;;;
기념품 파는 곳~
저 위에 걸린 것들이 우산.
우산들 정말 예쁘다. 클림트 그림이 프린트된 헝겁 가방도 예쁜데 동생이 몇년 전 유럽에 갔다 오면서 사다준 클림트 키스 가방이 있어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