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야 현 세대에서는 절대 치유 불가능이니 거기다 운하를 파거나 말거나 포기하고... 이 여세를 몰아서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자체장 선거도 싹 물갈이를 해버리길~
기운이 난 김에 오랜만에 인물 포스팅 옮겨오기를 해오려고 앉았다.
섭외 단계부터 두근두근 기대를 했던 이어령 선생님. 난 말 잘하고 똑똑한 남자를 좋아하는 불치병이 있는데 그 기준에 너무도 부합해 사모해마지 않는 분이다. ㅎㅎ;
너무나 기다리던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 ^^
역시나 말씀을 너무너무 잘 하신다.
암 수술 하셨다더니 다행히 건강해 보이심.
2009. 다행히 아직도 건강하시다. ^^
문화부 장관이란 직함에 너무너무 잘 어울리셨음. 문화부 장관이란 무릇 이런 비전과 감각이 있는 능력자가 해야지 웬 완장이 하나 설치고 있다니... 정말 문화라는 단어의 수치. -_-;
180036 지금 당장은 황금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먼지처럼 티끌이 되는 것이 많죠. 거꾸로 지금은 먼지처럼 하찮게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황금이 되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영인 문학관이라고 생각합니다.
0055 그 당시에 작가들이 낙서한 거라든가 또는 소지품, 정말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법한 소지품이 남아가지고 그것이 전시된 것을 보면 시간이 흐를 수록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수십년이 지나고 나면은 아주 귀중한 문학 자료가 된다. 그래서 영인문학관을 이렇게 둘러보면서 내가 늘 느끼는 것은 티끌을 황금으로 만드는 작은 기적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늘 하지요
0129 다른 문학관이나 박물관 미술관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제가 문학사상을 하면서 표지화를 본격적인 초상화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아주 저명한 미술가들이 한국 작가 또 작고한 문인해서 한 백여점의 본격적인 초상화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장 값진 것,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거죠. 왜냐면 다른데서는 한국 사람 초상 안그리니까.
0210 둘째는 이상이라든가 대단히 일찍 요절해가지고 자료가 전혀 없는 사람들의 필적, 특히 고공 다녔을 때의 학교에서 필기한 노트 같은 거, 이런 것들이 아주 귀중한 것으로, 그것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박물관의 존재 이유가 되는 그런 유품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자랑 거리죠.
0253 그 이전의 한국 문학이라는 것은 세대라는 말을 전혀 안썼지요. 왜냐하면 마치 상속자처럼 앞의 세대들이 물려준 땅에다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창작의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일정의 유산 상속자였지만, 일제 교육, 해방 직후의 이데올로기 싸움, 그리고 육이오 전쟁을 겪었던 그 당시 젊은이들의 문학이라는 것은 상속자가 아니라, 상속 받은 밭에다가 곡식을 가꾸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황무지에다가 자기가 밭을 만들어서 곡식을 가꾸어야 한다, 하는 소위 개척적인 것, 그리고 전통적인 것과의 단절, 새로운 것의 창조, 이런 것들이 그 당시의 문단의식이라고 볼 수 있어요.
0353 한마디로 말하자면 No라고 말하는 문학, 부정의 문학, 그리고 화전민이라고 하는 것은 알다시피 불태워가지고 임시로 만든 농경지기 때문에 토지가 아주 박합니다. 그래서 한번 농사를 지으면 또 떠나야 돼요. 그래서 불의 의식, 불 지른다는 의식,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농작물을 자기 마음대로 짓고 다시 떠나는, 지적 유목민이 된다는 것, 그 세 가지가 아마도 저를 포함한 전후 세대가 가졌던 세대 의식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이게 그 유명한 화전민 의식이었구나. 화전민 의식으로 화려하게 평론가에 등단한 이어령. 이런 수식어는 많이 들었어도 정확히 뭔지는 몰랐었다. 이제 의미 이해했음. 다행이다. 까딱하면 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나레이션 쓸 뻔 했음. 하긴... 그런게 한두번이냐. 솔직히 아는 게 더 적지.
2009. 세대라는 단어가 계급만큼이나 이렇게 싸움박질의 대상이 될 거라고 이때 누가 생각을 했을까. 분열을 조장하는 정권은 지도자로서 반성해야 함. 아니, 존재 가치가 없지.
0439 딱 들어맞는다고는 볼 수 없고 더군다나 부정의 문학이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무엇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정의 대상은 확실했는데 우리가 창조한 것은 극히 뚜렷한 윤곽을 갖지 못했죠. 굳이 말한다면 그 당시 송창섭이라든가, 최인훈의 광장, 조금 뒤에는 김승옥, 이런 사람들이 언어의 감성 제대로 제 나라 말로 소설을 쓴다, 일본식 한자식이 아니라 제대로 한국 말을 쓰기 시작한 문학, 제대로 문학다운 문학을 했다는 면에서는 대체로 그런 작가들이 당시에 화전민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저항의 문학을 했거나 그런 저항이 아니었을 때는 언어나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켰거나. 즉 불의 언어를 가진 작가들로 그렇게 예를 들 수 있죠.
--> 방송에 쓸 인터뷰. 딱 맞게 해주신다. ^^ 멋져요 선생님~~~~~♡
0603 평론가가 싸움을 한다는 것, 논쟁을 한다는 것은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해가 없는 것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권력과 돈 때문에 싸우는 거거든요. 그런데 문학 논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장미 밭의 전쟁, 아름다움을 위한 서로의 투쟁이고 싸움이기 때문에 어떤 나쁜 문학 논쟁도 하고 나면 그건 결과적으로 순수하고, 서로 보상 없는 싸움이기 때문에. 이긴 자나 진 자나 보상이 없잖아요. 트로피도 안주니까. 그런 무해한 것을 위해서 지적인 열정을 가지고 싸운다는 것이 나는 아주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엔 논쟁을 잘 안하죠. 거의 다 주례사. 의례적인 그런 얘기들을 해요.
0700 그래서 사실 논쟁에 대해서 제가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김수영 시인하고의 문학 논쟁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참여와 순수 논쟁이라고 하지만 사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 개가 딱 갈라지는 것은 아니고,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김수영 선생 자신이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고 서로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마치 탁구나 테니스를 하는 것처럼 저쪽은 어떻게 서브를 한다, 리시브를 한다 아주 즐거운 논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은 문학을 하나의 정치나 사회 기능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면 문학 자체의 독립된 자유로 보느냐, 하나의 문학 해석을 에워싼 논쟁이었기 때문에 오늘 날에도 문학 하는 사람들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 논쟁을 읽어보면 은 나는 어느 입장에서 문학을 하는가가 분명해지기 때문에. 옳고 그름이 아니라 문학을 하는 태도에 대한 논쟁입니다. 아주 나는 지금도 두 사람, 나와 김수영 선생과의 문학 논쟁을 인상 깊고, 가장 어느 의미에서는 보람 있는 그런 논쟁이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싶죠.
0846 그것은 전혜린이라는 사람, 작가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고 (NG)
0852 영원히 탄압받는 다는 거죠, 그렇게 숙명적인 것이 작가라는 거죠. 그것이 귀중한 언어라는거에요. 항상 권력에 대해서 끝없이. 왜 인간이라는 것이 요순 이후에 한번도 완전한 사회가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끝없이 종교는 죽음이 끊이지 않는 틈에서도 종교가 있듯이 끝없이 인간에게 부조리나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다는거에요 자 시작할까요?(NG?;;;)
0940 그때 제목이 누가 문학의 조종을 올리는가, 누가 문학을 오히려, 문학의 죽음을 오히려 보여주는가, 그러한 것을 나타 내는가였는데 제가 주장한 것은 애초에 김수영 시인이 불온시론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지금 좋은 시들, 즉 불온한 시들, 지금 현 체제에서 봤을 때는 불온한 시들이 지금 서랍 속에서 발표되지 못한채로 억압돼서 발표를 못하고 있다, 이 시가 햇볕을 보는 한 진정한 한국문학과 시가 이뤄지는거지 지금 시라는 것은 다 엉터리다, 그런 식으로 먼저 얘기를 했던 거에요. 그래서 제 얘기는 아니다, 시를 불온유물로 보는 것부터가 나는 싫다, 가령 너는 왜 빨간 꽃을 그렸냐, 허고많은데...너 좀 사상이 이상한 것 아니냐, 하고 관헌이 이야기 하는 것이나, 혁명가가 아 이 사람이 빨간 꽃을 그렸다, 뭔가 혁명적인 사상이 있다, 라고 이야기 하면 둘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거죠. 입장만 다르지. 왜 꽃을 꽃으로 보지 않고 꽃의 색깔에 의미를 붙여가지고 보려고 그러느냐, 그게 안좋은 거다, 결과적으로는 불온한 시들이 서랍에서 발표될 수 있는 상황이 돼서 한국 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때가 오면 또다시 시인은 불온한 시를 써야 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서랍 속의 불온한 시라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찮가지다, 그것이 발표될 수 있었을 때, 불온시가 발표될 수 있었을 때 맘 놓고 쓰는 시라는 것은 동물원의 사자를 사냥하는 것이나 마찮가지다. 사냥꾼은 산에 가서 하는 것이지 동물원의 이빨 빠진 사자를 사냥해가지고 그게 무슨 저항이고 참여냐 이런 논쟁을 했었는데
1141 시대가 지나고 보니까 과연 김수영 선배 시인이 생각했던 불온시들이 자유롭게 발표될 수 있는 상황이 왔는데도, 우리는 김수영 시인이 원했던 그런 놀라운 시들이 나온게 별로 기억되지 않는 걸로 보면 그 논쟁은 시대가 답해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혼자서 해보죠.
--> 이게 그 유명한 김수영 시인과의 문학 논쟁이었구나. 단편적으로만 알고 연결이 되지 않았던 일들을 육성으로 차곡차곡 정리하게 되는 것이 이번 다큐의 큰 수확이고 개인적인 기쁨이다. 논쟁이 살아있던 시대... 그 무익한 논쟁이 때로는 그립다. 말마따나 주례사 아니면 악의로 판단하는 세상이니... 하긴 비평이 아니라 비난을 즐기는 인간들도 물론 존해하긴 한다.
1222 김수영과 저의 논쟁의 계속이라고 볼 수 있죠. 문학의 언어는 대개 두가지로 나눌 수 있죠. 하나는 have 동사, 소유의 언어, 먹고 살고 하는 정치 경제, 현세, 일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소유 의식, 소유의 언어가 있고, 하는 존재의 언어, 사랑하고, 죽고 혼자 외롭게 지내고 하는 실존적인 고통이 있죠. 그 하나를 be동사의 언어, 존재의 언어다, 이렇게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면, 정치 참여나 이데올로기 쪽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때그때 신문 사설처럼 소설이나 시로 고소 고발하고 폭로하는 것은 주로 소유의 언어에 속한 것이고 전혜린이처럼 인간이 존재하는 그 자체의 외로움이라든가 인간의 죽음이라든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실존적 고통이라는 것은 정치 경제와 관계없이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종교의 문제라든가 하는 것은 늘 있어왔던 거죠.
1333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바뀌어서 노동조건이나 사회의 상황이 바뀌면 치열했던 언어들이 대낮의 촛불처럼 정체가 확실치 않아서 이건 다 잊어버리는데 전혜린이처럼 끝없이 존재의 심연 속에 존재하는 작은 별 같은 것은 어둠이 지속하는한 바뀌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시대상황이 바뀌어서 사라지는 작가들이 많지만 전혜린처럼 본질의 언어, 존재의 언어를 다루는 사람들은 끝없이 세대가 바뀌어도 공감하는 독자가 있다.
--> 설명을 참 쉽게 하신다. 그런 면에서 모호한 언어 유희로 사람을 몽롱하게 만드는 정과리 교수님과 비교가 됨. 언어에 대한 탐구. 방송용으로 적합하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1412 특히 전혜린을 제일 처음에 문단에 소개한게 ‘생의 한 가운데’ 제가 청탁해서 전후 문제 작품집에 제가 편집으로 있었을 때 그분을 문단에 소개했거든요. 그리고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제일 먼저 연락을 받고 그 유고집에다가 ‘그는 언제나 손님이었다.’ 라는 글을 쓴 걸 제가 서문도 쓰고 그랬는데. 지금도 전혜린이가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문단 내부의 누구나 그러한 어둠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촛불 같은 존재의 언어다, 그렇게 풀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러셨구나... 그래서 그리고 아무말도~ 에 그런 글이. 전혜린은 문학사 적으로는 솔직히 큰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 아니라 빼고 싶었지만 개인적으로 그녀를 무지 사모(?)하는 PD때문에 살짝꿍 끼어들어간 케이스. 하긴... 나 역시 그녀의 수필집에 나온 그 '안개 낀 뮌헨의 레몬빛 가로등'에 홀랑 빠져 뮌헨 유학을 꿈꿨던 인간이라 못이기는 척 찬성하긴 했다. ^^ 그리고 당시 한국 문학의 분위기를 설명하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1500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70년대 들어서면은 작가와 작품이라고 꼬집어서 말하기보다는 그 당시에 소위 문단이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문단이 형성이 되어서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라고 하는 문단적 유파가 생겨난거죠.
1527 그러니까 작가가 글을 쓰거나 평론을 쓸 때는 문지파냐 창작과 비평파냐 거기에서 생산되는 작가와 화두들이 주로 지배했던 시기죠.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작가보다도 70년대 80년대를 문단적으로나 문학적으로 특징지어진다면 계간지를 중심으로한 젊은 새로운 친구들의 그룹, 소위 그룹화 되어 있는 운동이 생긴 시대고, 그때는 작가를 비평하거나 작가를 볼 때도 개개인으로 보지 않고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이냐 하는 이념 중심으로 작가가 평가되고 했기 때문에 개개인의 작가들이, 물론 우수한 작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런 두 유파가 이끌어간, 주류를 이뤄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는 이문열이나 박완서, 이런 분들이 비교적 어느 유파에 속하지 않고 크게 문학에 영향력을 가진 작가들도 등장을 하죠. 그러니까 좋게 말하자면 처음으로 다양한 세력이 문단에서 각각 칼라를 가진 유파들이 많이 생겨나는데, 그 중에는 어떤 체제적인 것과, 체제에 반하는 것과 그 다음에는 비 체제적, 체제를 벗어난 비체제적인것, 그래서 친 체제, 반 체제, 비 체제, 이 3개의 그룹 운동이 일어난게 아닌가, 만약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비 체제요. 친 체제, 반 체제가 아니라 체제 자체가 악을 가지고 있다. 체제 자체 속에서 문학은 반대하건 풀허건(?) 거기에 대해서 소위 꽁트르, 이렇게 반대를 하든 체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문학의 죽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체제.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양분법으로 보면은 어떤 사람은 친체제고 어떤 사람은 반체제라고 보니까, 자기 자신은 비체제라고 하더라도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하는 시선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주장한 것은, 적어도 419 이후에 문학과 정치의 거리를 보고 권력과 문학이라는 것을 절대 일치하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소위 문학의 순수성, 정치에 관여안하는 게 순수하다는 게 아니에요. 권력이라는 것은 항상 문학을 순수하지 않게 하는구나, 체제라는 것은 항상 문학의 언어를 왜곡하는구나, 그것은 사일구 때 참 기쁨을 가지고 맞이했었는데도 역시 어떤 사회의 어떤 새로운 시대에도 그것이 조직화 되거나 정치와 연결될 경우에는 문학과 멀어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어떻게 문학이 한 발짝 현실과 떨어져 있는 곳에서, 또는 한 치라도 높은 곳에서 문학을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그냥 휩싸였을 때는 그게 문학의 죽음이 아니겠느냐 하는 그 당시에 소위 그런 강박관념 같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전후의 사정과는 조금 다르게 문단이 좋게 말하면 서로 틀을 갖췄고, 나쁘게 말하면 유파라고 하는 집단,의 어떤 그룹이 문학을 끌고 가는 새로운 문단이 생겨났다, 그렇게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봅니다.
--> 문학과 정치와의 관계. 이렇게 명확한 진단이 또 있을까? 체제, 이데올로기, 정치란 것과 문학은 거리를 둬야한다. 이 명제는 아마 문학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진리일듯
2009. 당시엔 막연하게 감탄했는데 이제는 이 부분을 읽으면 정말 아프다. 아마 우리 문학도 이번 5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1937 문학이 더 이상 전문가적인 특수 집단이 아니라 누구나 문학을 할 수 있게 아주 쉽게 문턱이 낮아졌다, 그렇게 90년대 문학을 말할 수 있겠어요. 특히 여성들의 진출이죠. 권지예니 이런 사람들 작품을 보면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게 종전의 기성세대 누구 밑에 사숙을 하고 그 집 드나들면서 문학 공부를 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고 정말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때 뛰어난, 우리가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진 거죠. 그래서 많은 여류 작가들이 등장한 것도, 그 전에 주부, 대학교수를 하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글을 쓴 것이 소위 아마츄어와 프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누구나 다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고 또 굉장히 수준 높은 글이 된다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에 옛날에 대중이라고 하면 질이 낮았는데, 90년대부터는 대중과 가깝고, 문단 아닌데서 튀어나온 작가들이 굉장한 문학 독자들을 갖기 시작했죠. 평론가의 손에서 점차로 작가들이 자유로워져서 직접 독자들이 작가를 만들어 내는 그런 시대로 왔다,
--> 그런가? 그런데... 난 90년대 이후부터 순수 문학과 거의 결별하다 시피 했다. 재미가 없었다. -_-;;;
이것이 7,80년대 비해서 90년대 이후에 개체, 개개인의 작가들이 직접 독자의 심판을 받아서 요즘 말로 문단에 의해서 띄워주는 작가들이 아니고 하나의 독자에 의해서 뜨는 작가들이 많이 시작됐다, 그래서 90년대 이후의 작가들은 주로 여성들이 많고 다양성, 이데올로기라던가 문학관에 의해서 흑백으로 나눠질 수 없는 자연스러운 문학행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2213 원래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스토리, 히스토리와 스토리가 같듯이 대게 하나의 개인, 왕조사가 아니고 개인사, 역사가 바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대개 역사소설이라고 해도 세가지 유형이 있다고 봐요.
2233 하나는 대원군, 김동인의 젊은 그들이라든지 이()의 대원군처럼 역사적 인물을 새롭게 서술해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임꺽정에서부터, 홍길동에서부터 시작해요.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에 이르는 소위 의협, 의도 소설이, 사회성을 담은 일종의 역사소설이지만 사회성이 강한 소설의 흐름이 강력한 대개 의도 소설이에요. 세 번째가 박경리의 토지처럼 연대기적 소설, 특히 우리가 일제 시대를 살고 어려운 시대를 겪었기 때문에 한 가족사와 같은, 또는 한 커뮤니티, 한 마을에 몇 대에 걸쳐온 삼대라던가 우리 나라의 아주 전통적인 풍속소설이나 연대기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토지에요.
2332 그런데 최근에 새롭게 등장하는 르포식 논픽션 스타일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일본의 시바 료타로라는 사람이 그런 소설을 많이 쓰고 국민적인 그런 하나의 인기를 모은 작가죠. 순수한 문학 작품도 아니고 대중적인 야담도 아닌, 많은 지식과 문학적 플러스를 가지고 생생하게 하나의 역사와 사회를 그려낸 것이죠. 그런 것이 대표적인 최인호 작가의 상도에서부터 시작해서 해신, 최근의 유림, 이렇게 그런 새로운 역사소설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그러한 시대적인, 사회적인 것을 하나의 심층적 테마로 해서 종교라던가, 상인이면 상인, 해신이면 장보고, 장보고라던가 이런 것을 통해서 아주 리얼하게 다루면서도 그 안에 하나의 사회적 씬을 담는, 그러한 르뽀르타쥬식 보고문학과 같은 그러한 드라이한 문체를 가지면서 픽션을 많이 섞지 않는 것 같은, 그러나 사실은 픽션이지만 그런 역사소설이 많이 생겨나고 있죠. 그래서 한국에 소위 말하는 창작, 픽션보다는 사실을 토대로 한 픽션, 이러한 중간 소설들이 많이 읽히고 시대적인 산물로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판타지 같은 것과는 또 다르게 사실적인 그런 세계, 픽션이 아닌 세계를 추구하는 그런 두가지 줄기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어요.
--> 역사 소설에 대한 질문. 가장 영양가 있는 답변을 해주셨음. 역사 소설에 관한 부분에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역사 소설의 종류에 대한 정의는 캬~ 소리가 절로 나옴.
2547 아까도 잠깐 이야기 했지만 소설의 경우 같은 것을 우리가 생각을 해보면은 대부분이 또 길거리고 메고 다니는 거울이 소설이다 하듯이 사회 고발적이고 폭로 소설 같은 것, 노동자를 다룬, 사회적 관심사를 다룬 그런 것들이 많이 있었죠. 그리고 정치적인 억압에 대한 하나의 고발 소설 같은 것이 많았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많이 다양해졌는데 특히 김훈의 칼의 노래, 이런 것. 역사 소설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도 없고, 특별한 이데올로기를 담은 것도 없고, 그러면서도 참 아름다우면서 우리들에게 관심을 끌죠. 특히 그 문체라던가. 전에는 작품을 너무 주제 중심으로 본 것 같은데 2000년대 오면은 우선 그 언어 자체가 한국말은 오랫동안 한자의 지배를 받았고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서 식민지 때... 이 불구의 언어들 많은 그 뭔가, 항상 바깥 언어에 의해서 오염된 건데 정말 세 살 때 배운 생생한 우리나라 말이 2000년대에 오니까 이제야 성숙해서 정말 제 나라 말로 쓰여진 소설들이 나오는구나,
2716 그런데 한 옆으로 인터넷 언어 같은 것을 보면 저게 정말 한국어인가 싶을 정도로 아주 이상한 것도 많이 나와요. 그래서 역시 문학은 언어를 소재로 하는 것이다. 언어가 힘이다. 경제의 돈, 정치의 권력, 문학은 뭐냐, 역시 언어 문제 아닌가. 그래서 2000년대 작가들에게는 이런 지적 모험, 언어를 매개로 한 지적 모험, 소위 자기 문체를 가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돋보이고 그것이 김훈의 경우만이 아니라 아까 얘기한 여러 여류 작가들 통해서 그런 것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죠. 생생한 세 살 때 배운 모국어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러한 한국말의 승리라고 할까. 그런 것이 2000년대에 들어서서 두드러지게 눈에 보이고, 이데올로기나, 항상 고통 속에서 빚어졌던, 혈서 같은 그러한 문학보다 좀 더 즐거운 문학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적이 아니고 모차르트 적이 아니냐 이렇게 해서 즐거운 문학, 행복의 문학, 그러한 새로운, 새 살이 돋는 문학이 있는게 아니냐, 사실 윤동주로부터 시작을 해서 우리가 늘 별을 노래하는, 깜깜한 밤이 되어야 비로소 빛나는 언어들이었잖아요. 전혜린 때도 이야기를 했지만. 고통을 주죠. 우리한테.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그래서 밝고 아름답고 즐거운 것, 그래서 조금은 즐거울 권리가 있다. 이젠 좀 즐겨도 되지 않느냐 하는 행복의 소설, 즐거움의 소설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소위 20세기가 끝난 한국 문학의, 누가 정한 것은 아니지만 암묵의 작은 약속들이 아닐까 그렇게 보고 있어요.
--> 베토벤이 아니라 모짜르트적.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수평이동이라는 의미. 한국의 문학가들과 평론가들은 의외일 정도로 한국문학에 대해 희망적인 의견을 가진 분들이 많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대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문학의 성격변화에 대한 또 하나의 가닥은 잡힌 것 같다.
0023 역사소설이 사랑받는 이유
0045 한마디로 민족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이 세게화되고 어느정도 경제성장이 되고 이러한 추세속에서 나는 어디서 왔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자기정체성이 흔들리기시작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속에서 역사를 다시보고 역사속에 문맥속에 자기를 놔두는 더큰나 작은 내가 아니라 더큰 나 역사속의 나 이런것들이 민주화 새로운 세계화속에서 새로 움트는 이런 민족의식같은것들이 정면에 나선 것 아닌가 특히 역사 교과서 문제같은 것이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소위 역사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하는것도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주의가 지나고 세나라들이 각자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해서 남은 자꾸 글로발해져가는데 오히려 동부아시아는 중국의 일본도 일본의 정체성을 찾아야겟다 한국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한중일 세나라들이 각기 서로의 민족주의적 경향을 띄기 시작했다
0214일본의 극우라는게 민족주의에요, 황국 천황주의, 중국의 동북아공정 같은 걸 하는걸보면 중국은 워낙 큰나라니까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으니까 어떻게 그것을 한족 한민족으로써의 정체성을 갖게 하나 그러니까 예를 들면 중국에서 인공위성 쐇을때 소수민족과 그 많은 어울른 하나의 역사, 더군다나 중국에서는 사실상 금나라에서부터 마지막 청나라까지 약한 780년인가 50년 그사이에 한 민족이 한족들이 제대로 나라를 주권을 가져본게 300년도 채 안되요
0308 놀랍죠 거의 1000년 가까운데 북경중심으로 보면은 한족이 밤낮 황제도 그렇고 역사도 유목민들한테 쫒겼죠 그런의미에서 굉장한 대국같지만 피해의식이 있다구 이나라도 그러니까 한 민족을 부르짖고 인공위성쐈을때는 위대한 한족이라는 말을 씁니다. 한국 뭐 말할 것도 없죠 두개의 거대한 나라와 거대한 경제대국과 군사대국사이에 껴있는데 그나라에서 내가 누구냐 그랬을때 어쩔수 없이 민족의식을 안가질수가 없게된다 그러나 세계는 글로발한쪽으로 점점 나가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역사소설이라고 하는 장르가 작가나 독자들에게 필요하고 요구되가고 있는게 아닌가 그건 아까 얘기한대로 말이 역사소설인지 파헤치고 보면 연대기적인거 역사 왕족중심의 왕을 중심으로 한거 세 번째가 풍속소설적인 그런걸 띄면서도 최인호의 경우처럼 역사적 주제를 발굴해가지고 천착해들어가는 한 역사를 파고 해부해가는 그러한것들이 각자 특이한 목소리를 가지고 똑같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말할수 있겠습니다
0444 질문
0452 그건 뭐 내가살던 세대때 문학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말하는게 정직한 답변이죠 손이 안으로 들어서가 아니라 사실 난 불행한시기에 태어났다고 느꼈어요 이름도 뺏기고 말도 뺏겼던 일제시대를 경험해봤었잖아요 한국어라는 것이 지금 젊은이들은 그냥 주어진거 아니에요?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음악가에 있어서 음 화가에게 있어서 색채처럼 음악가가 문학가가 문학가이면 뭘해요 언어가 있기 때문에 문학을 해, 그 가장 중요한 언어를 우리는 고쿠고죠요 국어상용이라고 해가지고 한국어를 쓰면은 잡혀가고 벌서고 또 학교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맡아서 하는거에요 그런 것을 겪었다는 것 일제식민지를 그 하에서 우리 언어가 어떻게 회복되고 어떻게 말소되어갔는가 이름을 어떻게 빼앗기고 다시 내이름을 찾는가 하는 극적인 것을 체험한 작가라는게 세계 어디있겠어요
0601 나는 나만의 이런 그 재산으로 봐요 그리고 해방후에 그렇게 사람들이 새로운 역사가 왔다고 즐거워했었는데 좌우익 투쟁과정이나 또는 625전쟁을 직접겪었거든요 그리고 그다음에 경제성장이라고 하는걸 말이죠 남의나라가 300년걸려서 한 것을 삼사십년걸쳐서 압축해가지고 하는 요즘말로 하면은 압축파일 푸는거 이런거를 경험한 작가가 어딨어요? 그러다가 또 옆에서 민주화가 일어나가지고 전연 큰 뽕밭이 바다로 바뀌는것 같은 큰 역사의 전환점을 소위 그 밀레니엄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것을 세계적으로 바뀌는 것을 봤죠 그래가지고 우리처럼 전화도 없어가지고 전화신청해가지고 청색전화니 백색전화니 하는 것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지금 자기 핸드폰을 가지고 쏘는 그 즐거움을 지금 젊은사람들은 절대 모르는데 우리는 그걸 지금 절실하게 느끼거든요 0707 그러니까 이렇게 큰 수렵초기때부터 왜냐하면 우리나라 봄이 되면은 나무를 캤어요 그게 수렵채집이지 그다음에 농업시대 그다음에 산업화 근대 산업화 과정 그다음에 정보화 지금은 뭐 황교수 뭐 이래가지고 피티해가지고 바이오테크놀로지 이게 그 다섯, 인류문명사의 다섯가지고비를 한평생속에 다 경험하고 그것도 그냥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 쓸수 있는 이게 가장 매혹적인 시대가 아닌가 정말 이거는 타고난 운명이 아니고는 경험할수 없는거야 특히 작가로써는 그런점에서 나와 동시대의 문학이 가장 엑사이팅하고 가장의미가 있고 가장 다양했던 아주 작가로서는 타고난 행복의 시대였다. 사실 가장 불행한 시기였는데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나 문학으로써 본다면 그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 그가 살아온 시대가 이렇게도 정리될 수있는 거로구나. 수백년이 수십년으로 압축된 파일 같은 한국의 역사라... 그리고 수렵->농경->근대산업화->정보화->바이오테크놀로지.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를 해주시다니. 써먹어야겠다. 인터뷰를 못 쓰면 나레이션으로라도.
0824 질문
0838 지금은 남아있는 작가보다는 잃어버린, 잊어버린 작가분이 많죠 나이가 많으니까 이제 돌아가신 분들이나 선배작가들 다 내곁을 떠나서 남아있지 않다고 또는 살아있어도 문학을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고 문학에서 멀어진 사람, 잊혀진 사람이 되버리고 세 번째 나보다 젊은 사람들은 세대차이가 있고 또 우리들을 아주 노인취급을 해가지고 스스로 등을 돌리고 떠난사람이 있기 때문에 나한테 떠난사람 얘기하라면 아주 많은데 남아있는 사람들을 말하라니까 참 고통스러워요 허구많은 사람중에 한사람의 후배를 놓고 얘기하라면은 김승옥작가 정말 본라이타 하늘이 주신 작가죠 내가 여러사람을 놓고 접해보면서 참 저사람은 다르다 난 저렇게 할 수가 없다 한목 놓는 사람이 김승옥이에요 소설이 아니라 말같은거 하는걸 보면 도저히 보통사람이 할수 없는 말을 눌변이죠 이렇게 더듬더듬 얘기하는데도 저 김승옥이가 아니면 저런말을 못하지 이런 작가에요 그래서 내곁에 또 대학시절에 내가 또 첫강의 했을때 김승옥 소설작가가 그때 3학년인가 4학년 불문과, 서울대 내가 첫 강의할 때 그래서 내가 첫 대학에서 만나서 문단에서 내가 그사람 평을 전면에다가 한번 쓰고 그러면서도 계속 인간관계를 나하고 유지하고 항상 내 어려울때 항상 내곁에 있어준 사람이 김승옥인데 그만 나보다도 먼저 언어장애가 와가지고 그렇게 해서 지금은 만나도 이야기 할 수가 없는게 서로 말을 주고 받을수 없는 그런 슬픔, 하나의 변화라 그럴까 그런걸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에 자주 못만나더라도 나한테는 여러작가들이 있고 친한사람들이 많지만 이제는 서로 터놓고 말할 유일한 상대의 작가중에 하난데 후밴데 만나도 그냥 눈으로만 서로 괜찮냐 하는식으로 떠듬떠듬 말할려고 하면 말하지마 말하지마 옆에서 이러는 관계 이것이 지나온날의 문단을 얘기하라 하면 그 얘기를 하고 싶다 그렇게 말할수 있죠
1207 해방에서부터 516까지는 소위 그 찾는시대였죠 암중모색이라고 그럴까 끝없이 찾으려고 하는 벗어나려고 하는 그런 시대기 때문에 단어하나로 말한다고 하면은 찾는 시대 찾아다니는시대라고 말할 수가 있고 516부터 그 후에 이르는 소위말하는 군사정권 그때를 모든사람들이 경제가 화두가 됬기 때문에 성장 뭐든지 이렇게 성장을 하자. 그런데서 오는 억압도 생기고 시행착오도 생겼다. 찾고 뭘 발견한 것 같았는데 과연 그 발견한 것이 옳은거냐 문제는 잇었지만 온민족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뛰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성장. 그게 뭐 억압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었고. 그다음시기에 온 것이 뭐 요즘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민족 민주화 이렇게 해서 여기에서는 찾는거 그리고 다시 성장해가는거, 지금와가지고 통일문제니 민주화문제니 해가지고 급작한 변화를 맞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각계각층에서 변혁이 온다 자연히 갈등과 분열도 생겨난다 부작용. 그렇게 해서 찾았던 시대, 뭔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뛰고 성장했던 시대, 하나의 민주화처럼 새로운 변화를 변혁을 위해서 끝없는 자기변혁에서 오는 갈등과 분열도 있었다. 이렇게 항상 두가지 밝음과 어두움을 가진채로 우리는 큰 건널목을 서너개의 건널목을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시대 개괄에 대한 설명까지 확실하게. 아마 이번 다큐멘터리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평론가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상당히 미시적인 대다수 작가들과 달리 평론가들은 확실히 거시적인 시점에서 시대의 방향과 흐름, 특색을 찾아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대답하지 않거나, 회피하거나 영양가없는 소리를 하는 소설가들이 상당후. 어쨌든 내게는 고마운 일이다.
2009. 지금은 또 어두운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음. 근데 정말 어둡고 길다. 악취도 심하고... -_-;
대부분 다 그렇듯이 축소지향의 일본인 시리즈를 읽고 이어령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그리고 문화부 장관 시절... 저 딱딱한 돌머리들은 절대 생각할 수 없는 톡톡 튀는 발상에 감탄했었다. 내 머릿속에 가장 똑똑한 사람 리스트의 상위권을 항상 차지하는 분이기도 함.
멀리서 동경하다가 가까이가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아서 기쁘다. 확실한 가치관과 지식 베이스를 가진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정말 즐겁다.
2009. 이어령 선생의 입장에서는 나란 존재는 전혀 모르고 나 홀로 사모하는 짝사랑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인연이 깊다. 몇년 전에는 이어령 선생이 책임편찬한 '한중일 문화코드읽기- 비교문화 상징사전'의 출판 기념회 영상 시나리오를 내가 쓰기도 했음. 내 밥벌이니까 홍보 대상에 대해 애정이 없어도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그 대상에 애정이 있으면 확실히 흥이라는 게 더 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정말 신나게 일을 했다.
현재 다섯 권까지 나왔는데 12권으로 예정된 이 프로젝트에 돈을 대준 게 문국현씨가 회장으로 있던 시절의 유한 양행이다. 표는 별로 나지 않지만 이런 수준 높은 문화 작업에 돈을 대는 그런 세련된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음. 그가 유한양행을 떠난 뒤에도 지원이 계속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문국현과 상관없이 비교문화 상징사전 12권 프로젝트가 완성이 되면 좋겠다.
내 돈 주고도 살 책이었지만 자료로 얻어서 더 행복한 책.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