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옛 직장 동료와 오랜만에 만나는 약속을 제외하고는 한가한 금요일 오후.
앉은 김에 놀지 말고 뭔가 좀 영양가 있는 일을 하나 해보려고 또 하나 퍼왔다.
이분은 별반 기억나는 게 없어서 코멘트보다는 그냥 2005년 기록의 공개 정도로 보면 되겠음.
한국문학에 대한 지식과 안목, 애정이 대단한 미국 학자이다.
데이비드 맥캔(David R McCann)교수는 하버드대학에서 동아시아문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한국문학을 전공 1976년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1960년대에는 한국의 안동농고등에서 평화봉사단의 영어교사로 재직했으며, 하버드대학에 한국학 연구소를 개설 한국문학을 세계화 하는데 이바지했다.
1966에 안동의 작은 서점에서 발견한 김소월의 시집을 읽고서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중 몇 몇 시들을 번역해보려고도 했었는데, 책에 적힌 번역글과 한글버전을 비교하며 번역을 하면서 점점 더 김소월에게 흥미가 생겨서, 심지어는 몇 개의 시들을 공부하고 암기하기까지 했다. 그리고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의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던지, 나의 그런 흥미에 대해 말하면 누구나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먼훗날이라는 시들을 읊곤 한다. 모두 그의 시들을 좋아했고, 덕분에 내 흥미도 더 강해졌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완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은, 김소월의 시들을 공부할 당시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몇 년 상간으로 시집을 발간해서 그 이름을 듣게 되었다. 만해는 굉장한 애국자였고, 승려였으며, 정말 대단한 시인이었다.
서정주의 시는 다시 1973년에 박사학위논문을 위해서 한국에 들어와서 자주 접하게 되었다. 서정주를 직접 만날 기회도 있어서 그의 시들을 번역하고 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대단히 따뜻한 사람이어서 그를 만나는 것은 즐거웠다. 그는, 번역을 해보라고 말했는데, 하지만 모두가 그의 시는 번역하기에는 난해하다는 말을 하더라고 했다. 어쨌든 다행히도 나에게는 그의 시들을 번역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시집 중 3개를 번역하게 되었다. 그를 더 알게 되었을때 그가 나의 아버지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생일이 단지 몇 개월만 이르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는 아버지의 큰형같은 존재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그의 작품들을 번역하는데에도 열심히 했다.
흠.. 굉장히 많다. 설명하기는 힘들다. 좋아하는 점들 중에 하나는,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방식인데, 뭔가 마법같은 전환이 매우 멋지다. 그의 시 중에 하나, 동천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는 시인이 가슴속에 있는 연인의 눈썹의 곡선을 겨울하늘에 공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하늘에 새 한 마리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데, 그 흐름이 굉장히 멋지다. 그의 첫시집 화사집에 있는 시들중에는 강하고 열정적인 시들이 많은데, 그 시집은 상당히 오래전에 출간되었다. 또 그가 노년에 쓴 시들 중에는 매우 부드러운 내용도 많다. 그는 늙어간다는 것과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감상을 주로 썼다. 또 그는 세계일주를 한 것에 대한 시집도 냈는데, 그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렇듯 그의 작품들에는 굉장히 많은 종류들이 있고, 쓰는 방식이나 언어도 다채롭다. 특히 그의 언어는 매우 아름답다.
--> 동감. 이 인터뷰 때문에 서정주 시인이 뒤늦게 아이템으로 끼어들었음. 솔직히 90분이란 시간 안에 한국 현대 문학을 제대로 얘기한다는 건 불가능이다. 사건 위주로 가다보니 아무래도 조용히 작품 활동 한 분들은 빠지기 쉬웠음.
2009. 이때만 해도 친일 논쟁에 대해 난 상당히 유~한 편이었다. 일단 나 자신을 대입해서 봤을 때 항일할 자신은 없고, 적극적인 친일도 안 할 거라고 어느 정도는 자신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넓은 의미로 보면 친일로 포함되는 그런 짓꺼리를 안 하고 살았을 거라고 보장을 못 한다. 내 한계치는 절필하고 조용히 칩거한 청록파 정도의 수준이지. 그런 의미에서 만해니 육사 같은 분을 존경하고 소극적인 친일은 불가항력으로 이해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뉴또라이나 친일파 찌끄러기들이 설치는 꼴을 보니 -이광수가 사실은 친일이 아니었다고?- 악감정 없었던 서정주 시인의 친일 논란까지 기억 저~~~ 아래에서 수면 위로 확확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시기>
흠... 글쎄...아마도 내가 1970년대에 한국에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그 시기가 가장 흥미롭다. 서울에 있었는데, 여기저기를 다니며 많은 작가들과 시인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의 문학계는 굉장히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했다. 내가 만난 작가들 중에는, 김지하, 신경린, 이호철, 서정주, 박재삼 외에 많은 분들이 있었는데, 주로 잡지 창작과 비평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때의 문학계는 흥미로웠는데, 그 중 한 예로, 순수파와 참여파의 대립이 인상적이었다. 순수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과 정치사회적으로 참여를 하며 그에 대한 것을 쓰는 사람들의 대립이었다. 그것이 당시의 문학계를 활기차게 만드는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 이 얘기를 많이 하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그냥 겉핥기 정도도 힘들지 않을까... 아쉽다.
2009. 힘을 잃고 있던 소위 참여파에 해당하는 행동주의 문학가들이 순수파들을 압도하는 거작을 좀 내줬으면 하는 시기가 지금이지 싶음. 다만 어느 분처럼 노벨상에 대한 욕망은 좀 접어주시고... ^^; 훗날 역사 펑가에 이광수=황0영이 같은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싶음.
당시에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이 즐거웠고, 덕분에 당시의 시대상을 잘 알 수가 있었다. 또한 서울을 벗어나 여행을 하기도 했는데, 한국내에 다른 어떤 문학상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대구나 낙동강 쪽 광주등에도 지역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독특한 문학상이 있었는데, 그들을 알게 되는 것도 즐거웠다.
미래에 대한 충고(?)
우선, 번역이 되어야 한다. 번역이 잘 되어야 하고, 출판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일에 대해서 수년간, 미국이나 유럽이나 세계의 여러나라에서, 한국의 작가들에 대해서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번역을 하는 것인데. 한국어는 영어를 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라도, 영어, 불어, 독어, 혹은 어떤 외국어로 번역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 소질이 있는데, 영어로나 어떤 유럽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번역이란 오직 한가지 난점일 뿐이다.
그 다음에는, 물론, 번역이후에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출판을 할 것이며, 어떻게 홍보할 것이며, 어떻게 읽게 할 것이냐의 문제. 그래서 어떻게, 예를 들어, 미국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작가, 혹은 작가들, 에 대해서 알게 되어 그들의 작품을 읽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내 생각에, 아마도 대부분은 큰 출판업계에만 치중하고 베스트 셀러를 만드려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것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다. 미국의 출판업계는 매우 끼여들기 어려워서, 한국의 문학을 알리는 것은 힘든 과제다.
2주전에 보스턴 글로브 잡지에서 본 글인데, 작년의 미국의 출판업계에 대한 이야기다 - 195000권의 책들이 출판되었으며, 43000권의 소설이 출판되었고, 총 2200000000권의 도서가 인쇄되었다. 그렇지만 그 중 판대된 량은 비록 그 수가 매우,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는 있지만 고작 3%뿐이다. 그것은, 대형 출판업계의 출판업자들은 출판을 하고 재출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신인이나 기성 작가들에게서 바라고 있다는 의미다.
--> 잘 써먹겠음. 무척 고마운 통계 수치. ^^
2009. 실제로 잘 써먹었다. 다큐라는 건 한번씩 이런 극적인 수치나 통계가 등장해줘야 뭔가 있어 보이는 고로~ ㅎㅎ
그렇지만 이 수치상의 통계가 한국의 문학이 얼마나 대형 출판업계에서 출판되기가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내 생각에, 한국의 문학은 먼저 미국의 잡지나 저널에 소개되어야 한다. 포에트리 잡지나 뉴요커에 그런 문학소개란이 있다. 특히 뉴요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어번역본을 출간했는데 그의 책들은 내가 출판을 한 몇 년 후에 출판되었다. 우리가 만약 그런 저널들이나 소규모 출판업자들에게 한국문학을 소개하고 출판할 수 있다면, 서서히 대형 출판사들도 고은이나 이문열같은 한국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차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한국의 문학이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다르냐는 것에 대한 질문이라면...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답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난 중국이나 일본의 현대 문학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한때는 광양대(?)에서 고전일본문학을 가르치기도 했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나 다른 현대의 유명 작가들이 쓰는 스타일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렇지만 한국문학에, 내가 즐기는 유난히 독특한 색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화자의 목소리이다. 때때로 굉장히 재미있는 언어가 있는데. 예를 들어 농담을 하는 듯한 언어를 쓰는 경우다. 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사람이 춘향과 이도령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중간중간 설명을 하는 것이 비슷한 예이다. 한국어에는 신기할 정도로 재미있는 표현방법이 많이 있는데, 그 한 예로 신경림의 시 중에서 못난 놈들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건 흥미로운 생각이다. 따스하고, 사람들을 조화롭게 만드는 말투다. 한국어는, 그 언어 자체가 멋지다. 그 표현방법은, 형용사의 형태들이라던가, 부사들같은 것들이 굉장히 생동감 있다. 이런 것들을 영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동사의 변형도, 예를 들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있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보내드리오리다, 의 드리오리다, 라는 말은,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음악적이고 물흐르는 듯한 생동감을 전해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그것은 한국문학이 가진 대단히 중요한 특색이다.
--> 아마도 내부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리듬감이라... 이건 작품이 갖고 있을 때는 어지간한 번역만 만나도 가장 쉽게 전달이 되는 것 같다. 예전에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었을 때... 그 무식한 장편 소설 안에서 발견되는 시와 같은 운율에 기가 딱 질렸었다. 그런 느낌을 이들은 소월의 시에서 받았을까? 궁금...
왜 이런 단체를 만들었는가
몇 년전에 하와이 대학의 필 교수와 서울대의 권영민 교수가 처음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국제적인 단체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은 1992년에 하와이에서 첫 모임을 가졌는데, 미국과 한국의 학자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논문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서로 한국문학의 번역에도 힘쓰며 돕기를 원했다. 매우 불행히도, 필 교수가 1995년에 돌아가셨다. 올해로 10번째의 기일인데, 그의 죽음에 의해서 단체는 잠시 미루어졌고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몇 년전에 권영민 교수가 다시 그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해서 그와 나는 한국의 대학들이나 미국, 혹은 전세계의 대학들에서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을 모아 모임을 가지자고 얘기했다. 그리고 또한 전세계의 대학들에서 학자들을 모아, 예를 들면 하버드의 대학원생이 서울대의 대학원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고 했다.
일년전에 최초의 모임이 하버드에서 있었는데, 한국의 많은 대학원생들도 와서 하버드나 유씨엘에이나 다른 미국의 학교들에서 온 학생들과 만남을 가졌다. 올해는 서울대에서 모임을 가졌고 또한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국제적인 단체를 결성하는 일도 했다 (권교수가 대부분의 일을 추진했다). 어젯밤에는 단체의 재구성을 알렸고 앞으로는 학문적인 의견의 교환등이나 서로의 연구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일 등을 할 예정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일 중의 하나는, 한국의 고전문학교수 중 하나가 서울대에서 강의를 했는데, 한 학생이 한국적인것이란 무엇인지, 고전의 한국적이란 것과 전통의 한국적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자체가 굉장히 근현대의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젊은이들조차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미국인같은 사람들과 같이 알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래에는, 이런 모임이 더 많아지길 바라고 번역과 출판에 대한 일에도 힘쓸 생각이다.
어차피 나는 최후의 순간에 발동 걸리는 인간이려니 하고 오늘은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일도 안 되고 해서 하나 올렸음. 이것도 어차피 일의 연장이긴 하다. 이렇게 인터뷰를 점검하면서 어떤 것을 쓰고 어떤 것은 나레이션으로 풀어낼까를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되니까.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그의 달변이 상당히 희석이 되어 아쉬움. 원본을 올릴까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엄청나게 말을 잘 한다. 그리고 쓸모있는 말만 해준다. 내 입장에서는 업어주고 싶도록 고마운 사람. ^^
새삼 느낀 것. 많이 아는 사람은 어려운 말을 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만이 자신의 무식함을 감추려고 화려한 미사여구나 복잡한 비유, 수사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함.
2009. 굉장히 마음에 드는 인터뷰가 많았고 또 도움이 되는 내용도 많았는데 PD랑 의견이 맞지 않아서 내용만 옮겨쓰고 정작 인터뷰는 하나도 넣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아쉬움이 많이 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