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로 음악이란 걸 지겹고 하고 들어야 했던 연수가 두 자리 숫자. 음악으로 밥을 벌어먹었던 세월이 더하기 몇년.
그 긴 기간동안 나를 가장 괴롭혔던 질문이 두 가지 있다.
1. 노래 잘 하시겠네요?
-_-;;; 엄청 못한다. 다행히 음치는 아니라서 시창 시험은 보지만 공식적으로 시창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된 이후엔 대중 앞에서 노래한 적이 없다.
2. (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놓고) 이게 무슨 곡이죠? 더 황당한 건 이게 누구 연주죠? -_-++++
두번째 질문은 아예 대꾸할 가치도 없고 첫번째 질문에는 거의 대부분 두가지 대답을 한다.
a. 많이 듣긴 했는데 모르겠어요. <-- 이건 잘난척이 아니라... 두자리 숫자의 세월동안 전공자의 탈을 쓰게 되면 대한민국의 일반 대중에게 질문을 받을 곡 중에 들어보지 않은 곡은 거의 없게 된다.
b. 연주해봤는데.... 모르겠어요. <-- 이것도 정말임. 언제 어떤 악기가 나와서 연주할 거고 내 악기의 음까지 다 기억을 하는데도 곡목은 떠오르지 않는다. 보통 근래에 한 건 기억을 하는데 가끔 기억력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는 전날 연주하고 나온 곡목도 안 떠오른다. 비니아프스키의 레전드 사건이 갑자기... ㅠ.ㅠ
아주 가끔 위 두개 말고 정말 질문자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정말 많지는 않지만. ^^;
그 몇 안 되는 곡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M_ more.. | less.. |내게는 특별한 추억이랄까 기억이 있는 곡.
고등학교 2학년 때 졸업생인 피아노과 1등이 이 곡을 협연했다. 그때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이 곡을 하면서 라흐마니노프 2번이 궁극인줄 알던 초보는 3번의 세계을 알게 되었고 황홀경에 빠졌다. 1악장의 시작하는 테마. 그 말도 못하게 풍부한 화성적 울림. 수십번을 듣고 연습하고 해도 전율이 온다.
이 라선생 피협 3번을 통해서 오케스트라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리고 피아노의 진정한 매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떠밀려서 코스를 밟아가던 아이가 정말로 음악이 아름답고,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이렇게 다르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진심으로 느끼게 해 준 곡.
제목에 관한 한 닭보다 못한 기억력을 가진 내 뇌에게 용량밖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고 있다.
내가 속했던 그 좁은 세계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약간의 우월감과 비밀을 가졌다는 감정도 더해져서 내 인생 최고의 피협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샤인' 이란 영화의 대히트로 인해 갑자기 온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이 되어 버렸다. 뭐랄까... 내 비밀장소나 보물을 빼앗긴 느낌이랄까... 괜한 심통이 나서 몇년간 내팽개쳐놓고 거의 듣지도 않았다. 연주회가 있어도 유행에 따라 우우~ 몰려가는 사람 같아서 일부러 피해다녔고.
유행이란 게 늘 그렇듯 몇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 피협 3번도 많이 잊혀진 느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양과 비례해 식었던 내 애정은 부활하고 있다. ^^ 자주 들르는 블로그에 올라온 호로비츠 옹의 연주를 들으면서 불현듯 옛 생각이 나서 길게 끄적여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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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놀고 오늘 할당량 채워야겠다. 1페이지만 더 쓰면 채움. 다음주부터는 또 새 일 들어가니까 이번주처럼 탱탱 놀면서 취미생활은 불가능이다. 일이 없으면 없는대로 불안하고... 들어오면 또 귀찮고. 정말 프리랜서의 비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