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람 많이 복작거리는 곳에 별로 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예의상 보낸 초대장이려니 하고 무시했는데 주변의 압력에 밀려서 결국은 참석.
비가 오는 바람에 왔다 갔다 좀 귀찮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700명중 한명이었지만 앞 자리 뒷자리 가려서 밥이 달리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나오는 호텔 밥 잘 얻어먹고 선물까지 받아왔으니 택시비가 아깝지는 않았다.
먹었던 식사에 대한 코멘트를 좀 해두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 끄적.
행사에 관해.
부총리에 고건 전 총리에... 눈에 익은 사람들 구경은 쏠쏠.
밥 나오기 전의 행사와 축사를 맡은 분들의 얘기가 너무 길어서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_-;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도 어디서 얘기할 일 있으면 절대로 반드시 무조건 짧게 하겠다.
신라 호텔의 서비스.
내 친구 하나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얘네의 빡센 서비스 교육에 관해선 잘 듣고 있다. 그렇지만 워낙에 큰 행사라 그런지 이날은 좀 감당을 제대로 못한듯.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게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안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밖에서 서빙 트레이 움직이는 게 천둥처럼 들리고, 직원들 떠드는 소리 마구 들리고. -_-; 신라 호텔인지 백제 여관인지? 홈피에다 한마디 해주려다 귀찮아서 말았음. 알아서 고치면 일류인 것이고 모르고 저러면 지네들 망하는 거지 내 알 바 아니니까.
와인과 물을 보충해주는 사람들도 움직이는 동선만 계속 다니지 사각 지대는 거의 보충이 되지 않는다. 700명의 인원이 많긴 하지만 그걸 커버해주느냐 못하느냐가 일류와 이류의 차이인데 이런 큰 행사를 감당하는 능력은 이류.
식사에 관해.
와인.
[#M_ more.. | less.. |감동,... ㅠ.ㅠ CARMEN 2003년 산. MELOT 품종인데 짙은 루비빛에 베리향이 감도는 풍부한 맛. 살짝 감칠맛도는 첫맛부터 은은하게 과일향으로 마무리되는 끝맛까지 정말 감동이었다. 탄닌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볼륨은 있으나 부담은 없는 맛. 한마디로 밸런스가 끝내줬다. 오랜만에 OUTSTNDING 이라고 기록해주고 싶은 와인.
소뮬리에는 칭찬해주고 싶음.
빵.
하드롤과 버터롤이 하나씩 나왔는데 하드롤은 맛있었다. 그러나 버터롤은 수퍼나 할인점에서 무더기로 묶어서 파는 것과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음. 아마 그런 공장에서 곰급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도나 재료의 질에서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빵은 자기 왼쪽에 놓인 걸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한명이 착각해서 줄줄이 혼란이 좀 있었음. ^^;
애피타이저.
캐비어를 얹은 연어 타타르.
개인적으로... 연회 업자와 연어 수입업자와 도대체 어떤 커넥션이 있는지 한번 파헤쳐보고 싶다. 코스로 나오는 정식에서 연어가 빠진 결혼식은 한번도 못봤고 몇번 가봤던 행사에서도 거의 반드시. -_-;;; 신라호텔은 좀 다르지 않을까 했건만 역시나 연어였다.
야채와 다져서 테린느처럼 만들었고 위에 캐비어 몇알을 얹은 걸 제외하고는 연어라는 사실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음. 샐러리와 연어의 궁합이 좋다는 걸 발견한 게 유일한 수확.
수프.
파프리카 수프. 뜨겁지 않고 미적지근하게 식어서 나왔다는 데 이미 점수를 팍. 아무리 대규모 연회라고 해도 호텔이라면 뜨거운 음식은 제대로 뜨겁게 나와야지. 아니면 아예 찬 수프를 준비하던가. 공항 터미널 결혼식 피로연장에서도 수프는 뜨겁게 나온다. 고로 이건 신라 호텔 주방과 서빙 시스템의 문제.
생선.
오렌지 소스로 졸인 메로 구이가 나왔다.
메로란 생선 자체가 워낙에 맛이 있으니까... 그 생선을 망칠 정도로 허접한 셰프가 호텔에 있을 리가 없지. 제대로 뜨겁게 서빙이 됐음.
고기.
호박과 버섯, 껍질콩을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
이렇게 대규모로 나오는 식사에선 드문 일인데 미디움으로 제대로 구워져서 나왔다. 다만... 고기가 안심 치고는 너무 퍽퍽. 안심보다는 사태 부위의 맛이었다. 대규모 행사라 재료를 좀 싸구려로 쓰지 않았나 짐작됨.
나처럼 싱겁게 먹는 사람에게는 그리 거슬리지 않았지만 같은 테이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예외없이 소금을 치는 걸 보니 염도 조절에도 실패한듯. 소스가 흥건히 있음에도 다들 소금을 첨가하더라. ^^;
염도 문제는 젖혀놓고 일단 고기 질만 놓고 봐도 예전에 힐튼 호텔에서 있었던 비슷한 행사에서 먹었던, 정말 좋은 고기는 다 호텔로 가는구나!란 감탄이 절로 나오게 했던 스테이크와 엄청나게 비교됐다.
곁들임 야채들은 괜찮았다. 특히 구운 마늘 한쪽은 정말 느끼함을 달래주는 영약 같았음. ^^ 미지그했던 수프와 달리 고기는 접시가 델 정도로 뜨겁게 잘 서빙이 됐다.
샐러드
미모사 샐러드. 미모사가 들어갔다는 걸 제외하고는 평범한 재료에 코스와 그다지 궁합이 맞지 않는 드레싱. 랜치 + 치즈 드레싱인 것 같은데 고기의 느끼함과 더해져서 영... 그냥 샐러드와 빵만 먹었다면 몰라도 앙트레와 어울리는 드레싱은 아니었다.
디저트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과일 콤포트.
아이스크림 역시 기성제품인 것 같다. 투게더가 아니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갹하면서... 게운하게 먹어줬음. 과일 콤포트는 배를 졸인 것 같은데 확신은 못하겠음. 와인향은 제대로 냈지만 설탕양이 너무 많아서 한국인의 입맛엔 좀 지나치게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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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례품.
이걸 집에 와서 열어보면서 참석의 보람을 느꼈음. ㅎㅎ
행남자기의 접시 세트인데... 보통 이런 곳에서 선물로 주는 건 회사 이름을 떡하니 박아놓아 애물단지를 만드는데 그런 촌스런 짓을 하지 않은데다가, 접시도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완전한 서양풍도 또 완전한 동양풍도 아닌 약간 퓨전 느낌의 네모난 접시. 작은 크기 4, 중간 1, 큰 것 1. 앞으로 초밥, 회, 동양식 샐러드나 롤을 먹을 때 애용해줄 것 같음.
누군지 모르겠지만 선물 고른 사람에게 박수를~
쓰고 보니 좀 투덜투덜인데... 내 돈 주고는 절대 못 가는 신라호텔에서 풀코스에서 하나 빠진 저녁을 근~사하게 얻어먹고 왔으니 괜찮은 저녁이었다. 너무 배가 불러서 사양하고 온 홍차 생각이 지금은 좀 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