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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5.18

by choco 2010. 5. 18.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내 기억은 광주에서 휴교령이 내렸다는 기사에 '광주 애들은 학교 안 가서 좋겠다.'는 지극히 철없던 상념.  어린애한테 뭘 바라냐는 걸로 스스로에게 면죄부.

그 다음 기억은 고딩 때.  어쩌다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대화 중에 5월의 광주 얘기가 나왔을 때 광주에서 온 애가 -우리 학교는 전국구였다.-  해준 자신의 경험담.  피아노 선생님 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선생님과 자기 사이로 뭔가 슝 지나가더니 피아노를 뚫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게 총알이었다는...  놀란 선생님과 그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한참을 덜덜 떨고 있다가 나중에 부모님이 데리러와서 집에 간 뒤로 며칠 동안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만 있었다고 했다.  걔네 집은 시내 중심가도 아니었다는데 총알이 날아다닐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막무가내로 쏘아댔던 건지.

또 다른 기억은 전남도청 바로 옆에 있는 동네에서 그 일을 겪었다던 사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고 가장 깊숙한 방의 창문과 벽에 두꺼운 솜이불을 겹겹이 치고 온 가족이 함께 며칠동안 덜덜 떨었다고 한다.  무척이나 더웠었던 기억이 난다고...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울고불고 난리인데 자기는 우스웠다고 했다.  실제는 저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참했는데 어쩌면 저렇게 말끔하게 그려놨을까 하면서. 

친척 중에 죽기도 하고 소위 병신이 된 사람도 있지만 가족 회의 결과 유공자 신청 때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세상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죽고 다친 자식은 불쌍하지만 산 놈들은 살아야 한다고, 똑똑한 남은 자식들에게 굴레를 씌워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던 부모와 형제들을 그때도 욕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못하겠다. 

전설의 고향이 나오는 원혼처럼 자자손손 몇 대에 걸쳐 피의 복수를 할 자신이 없다면 질기게 살아 남는 게 이기는 길이라는 걸 재확인하는 중.  

그나저나 방아타령이라니... 방아타령이라니....  기가 막혀서.  이건 대놓고 욕보이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면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곡목 선정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 싫으면 대체할 퇴장용의 무난한 레퍼토리들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구만.  그 바닥을 떠난지 10년이 한참 넘은 내 머리에 지금 당장 떠오르는 의전용 퇴장곡만 해도 네댓개가 훌쩍 넘는다.  백보 양보해서 공무원과 음악감독이 쌍으로 ㅄ이라고 해도 이해 불가능의 선곡.  욕을 바가지로 먹고 막판에 다른 걸로 바꿨다고는 하지만 이 방아타령의 충격은 꽤 오래 갈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