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에네크 위르봉 | 시공사 | 2010.5.?-24
부두교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좀비와 저주 인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고. 기껏해야 우리의 무당이나 점쟁이 비슷한 주술사 정도가 더해지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단순화된 부두교의 이미지를 확 바꿔준다. 백인들의 가혹한 식민지 경영으로 아이티의 원주민들이 그야말로 초토화 -생물학적인 용어로 쓰자면 멸종 -_-;- 되자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대량으로 들여오면서 그 노동력 공백을 메꾸려고 시도한다. 흔히 일방적으로 백인들만의 노예 사냥으로 알고 있었던 이 노예 무역의 일부 아프리카 왕국들의 조직적인 가담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수적인 충격인 동시에... 나쁜 X은 역시 자기 이득을 위해서는 동족이고 뭐고 없다는 사실과 성악설의 재확인하게 해준다.
여하튼 이렇게 아이티로 끌려온 흑인들은 강제적인 백인들의 가톨릭 세례 의식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교묘하게 토속 신앙을 결합시켜 살아나가게 되는 게 바로 이게 부두교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개신교와 달리 카톨릭은 의식이 상당히 중시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을 잘 숨길 수 있는 효과적인 보호장치였고 그렇게 부두교는 강제로 아이티로 끌려온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게 된다.
마침내 수탈자인 백인들을 쫓아내고 세계 최초의 흑인 독립국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서 지배층은 백인들과의 교류를 위해 카톨릭을 국교로 삼고, 그 대다수는 부두교의 전통 아래에서 살아가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단순히 미개한 토속 신앙이나 신의 매개자인 무당 일인 중심이 아니라 그 의미나 의식, 또 일종의 종교인이자 사제 집단이 그 권위와 지위를 얻기 위한 교육과 입문 체계까지 몰랐던 사실들이 줄줄이 펼쳐진다. 솔직히 부두교는 우리 나라에서 은밀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신자와 일상에서 꽤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점교(^^; 달리 다른 단어를 찾기가 모호함. 아마 이게 가장 정확할 것 같다)보다 더 정교하고 조직화가 잘 된 것 같다.
정권에 이용되어 서로 엄청난 탄압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기도 하는... 머리 잘 돌아가는 지배자에게는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수단,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가 갈리는 혹세무민 집단이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정신적 지주이겠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좀비와 저주 인형보다는 조금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 근데 돈 버는 쪽으로 기가 막히게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인터넷으로 파는 -미국 사이트임- 부두교 저주용 세트 구입에 대한 흥미가 솔솔. 부두교에 가장 반대하고 이를 가는 18세기 카톨릭 사제가 그 영험함을 인정했을 정도니 효과가 좀 있지 않을까 싶다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