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티 부페가 아닌 -도대체 티를 부페로 먹으라는 발상을 한 인간이 누군지 궁금함. 티는 본래 우아~하게 앉아서 갖다주는 걸 즐겨야 하는 거라고!- 그나마 제대로 비스무레한 애프터눈 티를 내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던 곳이다. 본래 어제 상경 예정이었던 모님과 ㅇ씨와 셋이서 갈 예정이었으니 감기 몸살로 모님은 결국 상경 포기. ㅇ씨와 둘이 갔다.
롯데 호텔 신관 14층에 있는데 조용하고 널찍하니 분위기는 괜찮았다.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 중정이 보이는 창가에 앉았음. 의자도 편하고 북카페 형식이라 혼자 죽치고 앉아서 책 보면서 차를 마셔도 괜찮은 분위기.
애프터눈 티에 딸려 나는 로네펠트의 누봉을 시키고 ㅇ씨는 위에 좋다는 건위차를 시켰는데 애프터눈 티셋은 26000원 + 10% +10%, 모든 차 종류는 12000원 근방에서 왔다 갔다인데 이 역시 10%+10%가 붙는다. -_-;
세팅할 때 티매트를 먼저 깔아주는 걸 보고 오~ 개념이 있군! 이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찻잔은 자그마치 로젠탈!!!! @0@ 차가 식지 않도록 티팟은 워머에 올려주기까지 한다. 차문화권인 일본 관광객들이 많은 덕분이 아닐까 싶은 나름 섬세한 세팅.
그러나 이런 흉내는 비슷하게 냈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마이너스가 많음. 일단 티잔 웜업이 전혀 되어 있지 않고 또 잔을 데울 수 있는 뜨거운 물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따끈한 티잔이나 뜨거운 물이 기본으로 준비되는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실수랄까 배려 부족. 건위차는 티팟에 거름망을 넣어 우리는 형태였지만 내가 시킨 홍차는 티백. -_-; 명색이 호텔의, 그것도 티룸인데 티백은 쫌 심하지 않나? 그래도 차가 맛있어서 더 열내지 않고 패스.
애프터눈 티셋은 작고 앙증맞은 3단 트레이가 나온다. 영국의 먹다 배 터져 죽을 것 같은 푸짐한 애프터눈 티세트와 비교하면 황당하지만 오후의 소소한 간식으로 즐기기에는 아쉬움이 없는 양. 한입 크기의 샌드위치도 맛이 괜찮았고 치즈를 얹은 카나페는 맛있었다.
제일 윗단에 있는 건 역시 한 입 크기의 과일 케이크와 초코 케이크, 티라미수인데 과일 케이크는 상큼하니 최고 수준의 맛이었지만 티라미수는 너무 달았음. 이건 이 호텔 파티쉐의 취향인 모양이다. 이날 호텔 결혼식에 디저트로 나온 티라미수도 심각하게 달아서 맛만 보고 GG
제일 아랫단에 놓인 라스베리 스콘은 훌륭한 수준이었고 본 마망잼도 좋았지만 클로티드 크림이 아니라 크림 치즈가 나온 건 좀 심각한 에러. 마카롱은 딸기 에센스의 향이 물씬 풍기는 좀 싸구려틱한 맛. 미니 머핀은 질겼지만 녹차 마들렌은 아주 훌륭. 초콜릿도 맛있었다.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애프터눈 티셋이지만 넓고 조용한 분위기 + 괜찮은 서비스 + 평균은 되는 전반적인 맛을 대입시켜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라고 봄. 세명이 가서 애프터눈 티세트 하나와 차를 2종류 추가하는 게 가장 저렴하고 적당한 구성일 것 같다.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아 자주 갈 수는 없지만 -또 외부에서 차 마시는 건 솔직히 내겐 낭비. 어지간한 차 전문점보다 내 컬렉션이 더 낫다- 조용하고 느긋하게 오래 수다 떨면서 차 마실 일이 있을 때 가끔 들러줄 듯. 무선 인터넷이 되는지 외국인들이 넷북이나 노트북 갖고 앉아서 열심히 회의하고 일하고 있었다. 오래 죽치고 앉아도 절대 눈치를 볼 장소는 아니라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