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원 식사 최종 결과물 보고입니다.
이글루에서 어느 분이 시도해본 820원의 결과물.
820원으로 된다, 안 된다 설왕설래이던데 하자고 들면 난 그 가격으로 한달간 그럭저럭 먹을만 하고 영양적인 측면에서 모자라지 않은 식사를 차려낼 수 있을 것 같다.
단 여기엔 몇가지 전제 조건이 붙는다.
1. 반드시 여름이어야 한다.
다른 건 다 닥치고 오이가 겨울에 얼마 하는지 한번 사보라고 해주고 싶음.
그리고 올 4월에 야채값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계절에는 절대 불가능이라는 걸 인정할 걸.
물론 화분에 상추나 파 심어서 키워 먹으라는 인간이 어디선가 꼭 하나 튀어 나올 확률이 높긴 하다.
2. 한끼 820원을 넘어가면 절대 안 된다는 굳은 결의를 가진 사람들만이 가족 구성원이어야 한다.
어른들이야 어떻게든 욕망을 참아낸다손 치지만 아이가 있다면 과연?
이 더운 여름에 아이스바 하나 사주지 않을 수 있을까?
더불어... 어른이라고 다 철이 든 건 아니다. 자식과 비슷한 수준의 부모가 있으면.... --;
저런 극기를 통해서만 바닥 탈출이 가능하다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굳건한 의지로 견딜 수 있겠지만 그게 요원하다면... 역시나 글쎄.
3. 식자재 구입과 요리에 대한 노하우가 기본 이상은 되어야 한다.
저분의 재료비는 요식업자로서의 노하우가 있어서 절감이 가능했다고 본다.
나도 작정하고 싼 재료를 사자고 들면 가장 싼 것을 사는 방법에 대해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이건 정말 싼 걸! 싶은 게 있음. 다른 건 동네 차이가 있다고 하겠지만 두반장은 어디서 어느 상표를 샀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저 블로그 주인은 기본 이상이 아니라 평균 이상으로 요리를 잘 한다.
그에게는 손에 익은 일이겠지만 그가 10분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 다른 사람에게는 1시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일 수 있다.
맛있어 보이는 게 있어서 따라해본 게 있는데 난 저분보다 2배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잘난 척일 수 있겠지만 난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요리 솜씨나 속도가 평균은 된다. 그런 내가 저 타임보다 2배면 더 손에 익지 않은 사람은 시간도 더 걸릴 거고 맛도 분명히 떨어진다.
노력 대비 결과물이 더 나빠진다는 의미인데... 최저임금을 위해 하루종일 노동에 시달린 사람이 싼 재료를 구입해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여력과 기술이 가능할지에 대해서 난 좀 회의적이다.
물론 게으른 자들의 변명이라고 하는 비난은 일부분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사인에서 하는 최저 생계비 체험을 보고 진짜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어떤 엄마가 '우리는 몸이 재산이기 때문에 한달만 살고 떠날 당신들처럼 라면만 먹지 않는다고, 적은 돈이나마 쪼개고 또 쪼개서 어떻게든 애들에게 좋은 걸 먹이려고 노력한다'는 댓글을 봤다.
참가자들도 뜨끔했다지만 나도 뜨끔했다.
그래서 820원 식단을 고민해봤고 계절 한정으로는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거다.
하지만.... 내게 거둬먹여야 하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몰라도... 내 한 몸이라면 대충 때우는 걸 선택하는 날이 많을 듯. ^^; 실제로 80만원 받는 노동자일 때 그랬다.
이건 본질과 상관없는 사족인데... 점심은 회사에서 사주지 않느냐 등등의 뻘풀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분노 폭발!!!!!! 생리휴가 쓰는 여자들을 욕하는 차장 이후 이렇게 혈압이 확 올라보기는 또 오랜만.
작년에 80만원, 100만원 받는 서브 애들 점심값, 그것도 전액도 아니고 보조 받아주는데 한달을 넘게 싸웠다. 꼴랑 그 7만5천원을 갖고 도대체 어느 회사가 점심값을 주냐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둥. (그걸로 빈정 상해서 2명이 관뒀음. --+++) 겨우겨우 결제가 난 뒤로도 지급은 차일피일 미뤄서 중간에 관둔 애들은 그나마도 못 받았었다. --; 옛날에 MBC에 있을 때 어느 PD들끼리 -내가 듣고 있는 줄은 모르고- 작가들 만날 밤 새는데 먹이기라도 잘 먹여야 기운내서 일을 하니 맛있는 거 사먹이자는 소리를 듣고 헨젤과 그레텔의 마귀 할멈을 연상하면서 오싹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 인간들은 양심적이었음.
저런 극기를 요구하려면 내가 지금 이 고통을 참으면 좋은 세상이 올 거라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알량한 그 신기루도 못 보여주는 주제에. 부패한데다 무능하기까지 한 것들. 욕할 기운도 없구만 기어이 욕을 하게 만드는구나. 벼락은 도대체 어디서 뭐 하나 몰라.
4. 7월 25일에 뒤늦게 생각난 중요한 것 하나 더 추가.
가족 중에 절대 아픈, 특히 식이요법이 필수적인 난치성 만성 질환 환자가 없어야 한다.
당뇨, 신장병, 고혈압, 심장병, 결핵, 통풍 등의 환자가 있을 때는 해답 없음.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