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밝혔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니까 가감해서 참고로만 읽으시길~
수술.
삼성 의료원에서 담낭용종 절제수술을 했던 사람들의 글을 보니까 수술은 노약자 우선으로 비교적 젊은 사람들은 뒤로 밀린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가 노약자인지, 아니면 아주 일찌감치 수술 예약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수술인 아침 7시로 잡혔다. 수술 때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보호자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동생이 새벽에 왔다. (만약의 사태라는 건 복강경을 넣었는데 염증이 너무 심해서 개복으로 방법을 바꿔야 한다거나 등등의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일들.)
새벽에 어제 확보해놓은 주사 바늘에 포도당과 제산제를 꽂아주고, 6시 반 조금 넘어서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휠체어에 실려서 수술실로~ 두 다리 멀쩡한데 그냥 걸어가게 해주지 싶었지만 규정이 규정이니 만큼 X팔려 하면서 수술실로 갔더니... (휠체어 밀어주는 분이 수술실 입구에서 동생이랑 화이팅 등등 인사를 나누라고 하는데 우리 둘 다 위로나 과도한 관심을 즐기는 성격들이 아니라서 됐다고 하고 그냥 생략. 도저히 사양할 수 없어서 휠체어 밀어주신 분과는 하이 파이브를 했음. ㅎㅎ;)
수술실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니 이건 또 다시 양계장의 닭 내지 도살장에 줄 선 가축들이 떠오르는 분위기. 길게 종대로 수술을 받을 환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앉아있다. -_-; 그렇게 줄 세워 앉혀 놓으면 마취 관련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고 머리에 비닐 캡 같은 걸 씌워주고는 차례대로 수술실이 있는 구역으로 데려감.
휠체어를 끌고 가면서 간호사들의 수다에, 내 수술을 도와줄 간호사 중 한 명이 제주 한라병원에서 왔고, 또 한명도 제주 출신이라는 걸 본의 아니게 들었음. 모처럼 고향 사람을 만난 두 간호사의 반가운 해후 수다를 듣다보니 수술실. 누워서 수술 준비하고 마취과 선생 와서 호흡 마취 시작하는데 다섯까지 헤어리자 마자 바로 기절. ^^
그 다음에 정신이 든 곳은 회복실인데, 수술 들어가기 전에 회복실에서 상황을 보고 목에 넣은 호흡기를 떼어줄 테니까 갑갑해도 떼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는데 난 떼는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진통제를 놔주겠다고 할 때 벽에 걸린 시계를 봤더니 8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입원실로 옮겨갈 때 보호자 대기실에서 만난 동생에게 시간을 물어봤을 때 9시가 좀 넘었던 것 같다.
대기실에는 은행에서 대기자 번호 뜨듯이 전광판이 있어서 수술 들어갔다거나 회복실로 옮겨갔다는 등의 상황이 다 뜨고 또 보호자 핸드폰으로 문자 전송이 된다고 한다. 시스템 만큼은 확실히 좋은 것 같다.
입원실에는 당연히 침대로 돌아왔고, 간호사들과 옮겨주신 남자분이 시트를 들어서 누운 채로 침대로 옮겨줬음. 다른 병원에 같은 수술을 받았던 사람의 글을 보니까 침대만 붙여주고 본인이 움직여서 옮겨 누웠다고 하던데... 짐승의 회복력이 아닌 한 흠좀무.
기본적으로 복강경은 하나만 배꼽을 통해 뚫고 들어갈 거지만 상황을 봐서 4-5개까지 뚫을 수 있고 염증이나 협착이 심할 경우에는 개복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해서 어떨까 하고 봤더니 구멍은 하나만 낸 걸 보고 안도~ 근데 상복부 쪽에 칼자국이 한 줄 나 있었던 걸 보면 중간에 하나 더 뚫으려고 하다가 그냥 진행을 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을 리는 없겠지만 마음을 바꿔서 끝까지 하나만 뚫는 걸로 고수해주신 허진석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혼자 심심한 감사를~
전신마취를 하는 동안 폐가 납작하게 눌려있기 때문에 원상복귀를 위해서 4시간 동안 절대 자지 말고 5분 간격으로 깊게 심호흡을 해줘야 한다. 이 주의 사항은 이미 검색을 완료해 숙지한 사항이고 병원에서도 또 들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끊겨서 못 본 만화책들로 만반의 준비를 해놨었다.
진통제 때문인지 통증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고 잠을 자지 않고 심호흡을 계속 해주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수시로 소변을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소변량을 체크해서 만약 제대로 이걸 배출하지 못할 때에는 소변줄을 꽂아야 한다는 사실. 아프면서 인간답기는 참 힘들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정신이 멀쩡한데 소변줄을 꽂는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또 침대에서 환자 변기를 사용하는 것도 도저히... --;
수시로 화장실에 가서 물을 빼야한다는 게 1차적인 고통이었고 2차적으로는 점점 구토감이 심해지기 시작. 이건 어느 블로그의 경험담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증세였다. 구토만 없다면 화장실 출입이 그렇게 고통은 아닐 텐데 누워서도 미슥거리는 속은 일어서면 거의 죽음이다. 먹은 게 없으니 나오는 건 더 없고 결국 위액까지 토하고 난리를 치다가 진토제 처방을 받았다.
오후 느즈막히 수술을 했던 허진석 교수가 번개처럼 들렀다가 바람처럼 사라질 때 구토가 심하다고 했더니 '진통제 부작용일 수 있다'는 가벼운 맨트를 남기고 사라지심. -_-; 그렇지만 낮에 처방받은 진토제는 전혀 듣지 않고 점점 심해지다가 밤에는 너무 어지럼증과 구토가 심해서 화장실까지 가지도 못하고 휴지통에 토하는 난리를 쳤다.
결국 암병동에서 항암치료 받는 환자들이 쓰는 초강력 진토제를 처방받고 나서야 아주 조금 진정되기 시작. 그리고 한밤에 온 주치의는 이 진토제도 듣지 않으면 다른 문제일 수 있으니까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하자고 하는데... 약이 조금 돌기 시작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을 거라고 스스로 감을 잡았다.
낮에 그 교수님 말마따나 진통제 부작용 아니면 마취제 부작용이다. 난 내시경 할 때 프로포폴을 맞고 오면 꼬박 하루는 정신을 못 차리고 비몽사몽에 한동안 두통 등의 후유증이 있다. 그래도 매년 한번이고 그렇게 심하지는 않으니까 넘기지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그게 더 심하다. 아마 진통제와 마취제가 함께 상승 작용을 해서 이 난리가 난 거였으리라.
입원하면 수술과 치료 기간에 사용할 약의 이름과 효능, 부작용들이 적힌 종이를 주는데 -이건 아주 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함- 내게 사용된 것이 염산 페치딘 계열의 진통제였고, 그 부작용에 오심, 구토 등이 적혀있었다. 앞으로 수술 받을 일이 없어야겠지만 만약 받게 된다면 이건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걸 이번 사태로 뼈저리게 느꼈음. 얼마나 고생을 했냐면... 수술한 당일임에도 불구하고 수술 통증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다음날 좀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수술한 자리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
본래 계획은 저녁에 동생을 보내는 거였는데 -토하고 난리만 치지 않았어도 가능했을 것 같다- 준비도 없이 밤을 세운 동생이 고생을 많이 했음.
거의 20년 만에 병원에 들어와봐서 그런지 신기한 게 많았다. 예전에는 침대를 올리려면 보호자가 힘들게 옆에서 도드레를 돌렸어야 하는데 리모컨으로 침대 높낮이와 경사 조절이 가능하고, 소변량도 초음파 기계 같은 걸 가져와서 배에 대고 바로바로 잔량을 체크. 기술의 진보는 정말 좋은 것이야~
퇴원하고 병원에서 유二하게 그리웠던 게 에어컨과 경사가 조절되는 이 침대였다.
퇴원 날.
새벽에 검사를 위해 피를 뽑아간 뒤 6시에 다시 와서 물을 마셔도 된다고 해서 그때부터 열심히 물을 마시기 시작. 그리고 진통제도 하나 준다. 봉지에 쓰인 '마약'이라는 단어를 보니 기분이 묘~했지만 그렇게 독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이 참 간사한 게 죽을 것 같던 구토와 미슥거림, 두통이 사라지니까 갑자기 멀쩡하던 수술 자리가 아프기 시작. ㅎㅎ;
아침에 교수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괜찮냐?" "토해서 죽다 살았다" "진통제 때문에 그러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는 어제와 똑같은 대화를 한 뒤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으니까 오후에 퇴원해라"로 30초 대화 마무리. 그리고 아랫것들을 거느리고 다시 바람처럼 사라지심~
간호사 샘이 와서 이제 슬슬 걸으면서 운동을 좀 하라고 하기에 복도를 천천히 두바퀴 돌다가 다시 들어와 눕고 노닥노닥. 12시쯤 죽이 나와서 먹고, 동생이 원무과에 내려가서 계산하고 나니 간호사가 와서 링거 빼고 약 받고, 집에서 퇴원 후 관리 설명 듣고 수속 완료~ 이날 외래 진료와 추가 검사도 함께 예약하고 돈도 다 같이 낸다.
약은 보통은 진통제, 소화제 (식전, 식후 2종류), 담낭 수술 후 보조요법제라는 녹색의 작은 알약들이 처방되는데 내가 전날 하도 토하고 난리를 쳐서 그런지 제토제가 추가로 나왔다. 근데 얘는 한번도 먹지 않았음. ^^;
전날 동생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바람에 그냥 택시를 타고 집으로~ 삼성 의료원은 입원, 수술 당일, 퇴원날 무료주차권이 나온다는데 결국 한번도 써먹지 못했다.
외래 : 21900원
수술 전 검사: 119790
수술비 및 입원비 : 1395950원
수술 후 외래 및 검사: 42760원
진단서 및 처치: 19900원
이렇게 해서 삼성 의료원에만 총 1600300원을 갖다 바쳤음.
병원에서 받은 수술 전 안내문에는 병원비가 100-120만원 예상이라고 했고, 다른 사람들 글을 보면 150-200 사이라고 하던데 수술과 입원비만 딱 놓고 따지면 병원에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듯.
수술한 날 다인실 비었다고 옮기겠냐는 연락이 왔는데 -다른 곳에서는 절대 보지 못했던!!! 아마 예약을 한달 전에 한 때문이지 싶다- 컨디션이 너무 아니어서 그냥 2인실에 있겠다고 했었다. 옮겼으면 10만원 이상 절약이 되었을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집에서 회복하고 그동안 열심히 돈 갖다 바쳐온 보험회사들에게 돈 받아내는 일~
그건 또 나중에 정리해야겠다.
지금 더 쓰기 귀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