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부치 다케시 | 글항아리 | 2010.10.?-20
책소개에 나온 그림들이 예뻤고, 또 매니악한 쪽으로 따지면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일본 사람이 쓴 책이니 오골오골한 감상문으로 손발은 뒤틀리게 해도 최소한 건질 건 좀 있겠지 하고 선택을 한 책.
일단 걱정했던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저자 개인의 경험담이 꽤 많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자제했는데 건조한 스타일의 문장과 내용으로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일은 없었다. 홍차의 맛과 향을 묘사한다거나 멋진 티룸에 대한 경험담이 아니라 홍차의 역사를 훑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온갖 감상과 미사여구로 바를 여지가 없었다는 것도 담담한 전개에 도움을 준 것 같다.
기대했던 부분이었던 예쁜 그림들은 정말 기대 이상~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이전에 미술관이나 다른 곳에서 분명히 봤던 그림인데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예쁜 티세트며 티푸드들이 이제는 걔네들만 아예 클로즈업이 되서 눈에 들어온다.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차를 즐겼는지에 대한 백마디 구구한 설명보다 그 작고 앙증맞은 귀족들의 티타임이나, 하인나 노동자들이 잠시 쉬는 시간에 즐기는 투박하지만 푸짐해 보이는 찻잔들이 더 많은 얘기를 해주는 것 같다.
서양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의 차 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지나가고 -한국은 빠져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불평할 수 없다. 조선 때 한국의 차문화가 초토화됐다는 건 나도 인정하니까- 특히 중국 주변 소수민족들의 차문화에 대한 설명을 새로웠다.
예전에 읽었던 차에 관한 다른 책과 좀 상치되는 내용도 간혹 있기는 한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는 고로 내용의 정확성에 관한 비판은 접어두도록 하겠다. 내용 중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랩생 소총에 대한 평가 등- 그건 개인 취향인 관계로 역시 패스~ 일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중충한 한국의 겨울에 뜨거운 랍생 소총 한잔이 얼마나 근사한데... 동의할 수 없음.
그리고 테일러스 오브 헤로게이트의 얼그레이는 랩생소총에 베르가못을 더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어떤 극악무도한 맛일지 상상이 잘 안 된다. 살 엄두는 절대 안 나고 얘는 교환을 통해서 한번 마셔봐야겠음.
인도, 실론, 아프리카의 차 재배가 식민지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 과정을 이렇게 세세하게 만나고 설명을 들을 때마다 찝찝해지는 건 나 역시 한때 식민지였던 제 3세계에 속한 국가 출신이라는 증거겠지.
좀 더 실용적인 면으로 칭찬을 해주자면 뒤쪽에 맛있는 밀크티, 레몬티 끓이는 법도 나와있다. 그동안 우유에 차를 넣는 게 더 맛있다는 연구 결과를 계속 접해 왔음에도 오웰처럼 차에 우유를 넣어 밀크티를 끓여왔는데 조만간 우유에 차를 넣는 방식으로 끓여봐야겠다.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권 쯤 갖고 있으면 좋을 책. 차에 관한 그림들과 저자가 수집하고 찍은 사진들만으로도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예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