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장애인들을 비롯해 신체적 약자들에게 지옥 수준의 공간이란 걸 다리를 다치면서 실감하고 있다.
기브스와 목발 신세일 때는 병원에 갈 때 말고는 아예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칩거를 했기 때문에 막연한 수준이었는데 기브스를 풀고 운신을 하게 되니까 오히려 서울이란 공간의 배려 없음이 피부에 와 닿는다.
'서울 =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들만을 위한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런 불편에 대해 가장 배려를 해줘야 할 병원조차도 목발을 짚은 사람에게 힘겹게 밀어서 열도록 된 문을 밀고 들어가야 한다. 내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백화점과 몰의 휠체어용 출입구였는데 여긴 -물론 아주 큰 대형병원은 다르겠지만- 병원부터 문턱이 너무도 높았다. 오오~ 미쿡 최고~ 이러는 거 엄청 혐오하지만 좋은 건 좀 배워야 하는데... 어디서 나쁜 것만 죄다 주워와서 배우고 있으니. --;
여러가지 할 말이 많지만 다 풀자면 끝도 없으니 일단 전철을 갖고 좀 씹어보자면, 전철의 에스컬레이터는 폼으로 설치를 해놓은 것인지 올라갈 때는 그나마 낫지만 내려갈 때는 정지된 곳이 더 많다. 그런데 문제는 다리 관절에 이상이 있을 경우 오히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충격이 가고 아프다는 것. --;
예전에 유럽에 어느 도시에선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없어도 내려가는 건 꼭 켜놓은 걸 보고 이상하다고 했더니,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라는 대답을 들었었다. 관절염 등 다리에 문제가 있는 경우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고 다칠 위험이 많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가보다 했었더만... 내 발목이 정상이 아니니 내려가는 쪽이 오히려 더 절실하다는 걸 확실히 알겠다. 어느 한쪽이 더 불편할지,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약자 쪽을 배려한 유럽과 아무 개념이 없는 한국의 마인드가 극렬하게 비교된다.
하긴 시각 장애인용 노란색 블럭도 디자인 어쩌고 하면서 곳곳에 전혀 무쓸모가 되어버리는 색으로 바꾸고 -이건 욕 바가지로 먹고 다시 고쳤다는 얘기도 있던데 확인 못해봤음-, 점자 블록이 이어지는 곳에 차단 기둥 설치해 다리 부러뜨리는 일이 속출하는데도 그것도 죽어라 안 고치는 인간들에게 뭘 바라겠냐. --; 몸이 불편하니 성격도 삐뚫어지고 사회에 불만이 생기는 코스를 내가 제대로 밟아가는 듯.
그리고 하나만 더 적자면, 유모차나 휠체어를 위한 그 알량한 경사로도 다리가 아픈 사람에겐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모른다. 하지만 꽤 많다고 생각했던 그 경사로도 내가 아픈 다리를 끌고 다녀보니 턱없이 부족. (비교적 최근에 리모델링한 우리 아파트도 없다. ㅠ.ㅠ) 많이 늙으면 소수를 제외하고 지팡이나 보행보조기가 필요해질텐데, 제발 우리 노후를 위해서라도 좀 열심히 설치를 해놓자고! 그리고 그 경사로는 늙어 지팡이 질 때까지 갈 필요도 없이 당장 유모차도 쓰고 바퀴달린 무거운 가방이나 장바구니도 끌고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걸 생각해야 하는 인간들은 가방도 남이 들어주고 유모차 끌 일도 없으니... 더불어 자기들은 늙어도 절대 지팡이 같은 거 안 짚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지.
여하튼 나도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구조적인 배려 부족으로 인해 사고가 났을 때 막연하게 분노는 했어도 내가 당해보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그 불편에 대한 공감까지는 못 하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프로그램으로 기획을 좀 해서 진지하게 접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천국, 혹은 그들만의 도시를 우리들의 도시로 바꾸는 일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