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정리가 잘 된 글이다. 어쩌면 이런 자료들을 다 꼼꼼하게 찾아냈을까 감탄이 나오기도 하고. 좀 자극적인 소재라서 문체나 구성이 딱딱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읽혔겠지만, 선데이 서울을 읽는 것처럼 쉽고 흥미진진한 문장은 책일 손에 놓기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초 신경을 자극하다 못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런 저급함과는 거리가 먼 담백한 절도를 지키고 있다.
참 글을 잘 쓰고 또 억지로 짜낸 글이 아니라 풍부한 지식의 바다에서 적당히 퍼올린 박학다식한 저자라는 감탄을 하면서 약력을 찾아보니까 평생에 걸쳐 친일파에 대한 연구를 해온 분이셨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그 매체를 활용해 어중떠중들이 자청타청 재야 사학자를 칭하는 걸 보면서 많이 비웃었는데 (물론 아닌 분도 많으니 해당 없는 분들은 발끈하지 마시고~) 이분은 재야사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도 줄이가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제 침략기에 조선이 일본의 호구였고, 엄청난 수탈과 부패의 온상이었다는 건 정치사, 경제사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포커스를 유흥,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매춘과 연결해서 좁히니 정말 아수라장 내지, 속어로 말하는 앗싸리 판이 바로 여기였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호색가로 이름 높았던 이토 히로부미 통감을 시작으로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의 일확천금의 꿈. 그것과 연결된 관리들의 이권 불하의 검은 커넥션은 당연히 요정이나 술집들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고 그 안에서 밤문화(갑자기 대구의 그 화끈한 어쩌고 씨가 떠오르는군. ㅋㅋ)의 번성은 당연지사. 그 밤문화를 수놓았던 유명한 게이샤들과 연결된 관리, 부호들의 오입질 기록은 곧 우리에겐 수탈의 기록이 되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인을 포함한 타국인들에겐 그저 기막힌 부패와 매춘 스캔들일 뿐인 이 선데이 서울은 우리에겐 아주 씁쓸한 역사로 다가온다.
이 저자는 일본의 침략과 거기에 얹혀 들어온 일본인들에 대한 혐오를 아주 강하게 갖고 있다. 하지만 대놓고 '나 쟤 싫어! 쟤 죽일 놈!' 이라는 일차적인 비판 대신 현실을 보여주고, 뒤로 돌아쳐서 욕을 해 공감을 유도하는 고급스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주제의 요점은 딱 잡고 있지만 폭넓은 부분을 함께 다룬 저자의 글쓰기 덕분에 당시 국제 정세나 일본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재미있었다. 일본의 근현대사 부분은 일본인들이 손에 쓰여진 거라 아무래도 분칠이 어느 정도는 될 수 있는데 외부인의 시각에서 그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내게는 이해가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해방 이후 조선에 거류했던 일본인들의 운명은... 중국에서 똑같이 못된 짓 했던 놈들은 마을 전체에서 몇 명만이 살아 남는 등 아주 제대로 응징을 받았지만 남쪽에선 거의 고스란히 일본으로 곱게 돌아갔고, 그나마 핍박을 받았다던 북쪽에서도 마음 착한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대규모 탈출도 이뤄지는 등 저지른 죄에 비해 인과응보는 이뤄지지 못했다.
6.25 때 말도 안 하고 홀라당 도망갔다가 돌아와서는 부역했다고 멀쩡한 사람들 다 잡아 죽인 그런 노력과 정신의 반만 친일파들을 단죄하는 데 썼더라면 지금 우리가 이 난장판은 아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아주아주 곱게 일본으로 돌아간 조선 거류 일본인들을 보면서 느꼈다.
우리가 참 착한 건지, 아님 말 그대로 병신인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난 이렇게 복수에 불타는 캐릭터가 절대 아니었는데... 좋은 게 좋은 거고, 세상에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던 평생을 지켜온 인생관이 요 3년 간 뉴라이트들과 쥐 일당이 설치는 꼴을 보니 총체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황폐해진 내 인간성과 자비심은 일단 저 떼들을 다 쓸어버린 다음에 복구시키기로 했음.
책 내용과는 별 상관없지만 이 분이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시대 경상도의 좀 살거나 나름 뼈대 있었거나 행세를 했던 보수적인 가정의 전형적인 (이건 관찰 대상이 좁기 때문에 일반화는 할 수 없다) 태도인 것 같다.
한탕 하러 온 완전 불상놈들.
우리 외할머니를 비롯해 일제 시대에 먹고 살만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 일본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치일 일 없었던 경상도 분들은 당시 조선에 와있던 일본인들을 본국에선 찍도 못 쓰던 상놈들이 건너와 거들먹거리고 행세한다는 인식을 가지셨던 것 같다. 과거를 회상하는 대화에서 늘 점잖은 일본사람과 왜놈들을 아예 단어상으로 구별하셨음. ^^; 아마 내가 지금 주한미군을 미국사람과 백인 쓰레기로 구별하는 심정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