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룬 메르클레 | 열대림 | 2010.11?12?-12.?
작년에 끝내놓고 귀찮아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는데 이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있어서 잽싸게. ^^;
원제는 Tafelfreuden - Eine Geschichte des Geniessens로 2001년에 나온 책이다.
꽤 오랫동안 갖고 싶어 구매 목록에 올려놨던 책을 몇년 만에 지르긴 했는데... 하드커버로 잘 만든 책의 꾸밈새나 전반부의 컬러도판 등 책에 든 공과 외적인 질은 인정하지만 내용은 가격대비 살짝 함량미달이다.
아마 이런 류의 책 중에 내가 이걸 제일 먼저 봤다면 "오오! 이런 일이~" 하면서 감탄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게도 또 내게도 불행히 얘보다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먼저 읽은 책들은 이 책과 비슷한 구성으로 진행하고 있었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어디서 본 것들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서양의 식문화 발달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그 메디치 가의 아가씨들과 포크 등) 때문에 신선함이 주는 호감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또 결정적으로 책값 대비 얘는 다른 책에 비해 분량도 적었다. 무조건 양이 많아도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두툼하고 더불어 내용도 풍부한 비슷한 류의 책들을 보다가 식탁 위의 쾌락을 읽으니 아무래도 좀 허전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식도락 유행을 만들어낸 요리사들에 대한 얘기들이 자주 등장해서 나름 재미있었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건 16세기에 황제의 아들인 페르디난트 대공과 결혼한 요리사 필리피네.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시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교회에서도 비밀에 부친 결혼 생활을 하던 그녀가 결국 시아버지의 축복을 얻어낸 건 탁월한 요리 솜씨 덕분이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요리를 잘 했기에? 아니면 그 시아버지인 페르디난트 황제가 얼마나 식도락을 즐겼을지 궁금.
매 끼니마다 24가지 요리가 식탁 위에 차려졌다고 하는데 현대인의 시각에선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지만... 예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천재의 은밀한 취미던가?를 보면 건강을 위한 간소한 요리 코스를 내놓으려는 다빈치에게 스포르짜 공이 손님들에게 무례라고 말렸다는 기록이나 중국을 떠올려 보면 음식 쌓아놓고 과시하는 건 동서고금 부자들의 필수였던 것 같다.
내용대비 몸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가볍게 읽어보기 나쁘지는 않은 책이다.